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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부커스' 젊은문인 좌담 마련…"일상이 된 스포츠…이젠 문학소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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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부커스' 젊은문인 좌담 마련…"일상이 된 스포츠…이젠 문학소재로"

입력
200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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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관중석이 꽉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시인은 홀로 세상과 싸우지만, 세상은 그가 선 자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75)가 월드컵 개막식 전야제에서 낭송한 시 ‘밤의 경기장’.

단 네 줄의 짧은 시에서 그는 시인의 운명을 날카롭게 통찰했다.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시작(詩作)의 모티프로 삼은 것은 ‘축구’였다.

스포츠를 문학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외국 작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미국 작가 잭 케루악의 장편소설 ‘노상(路上)에서’의 등장인물인 주차요원은 하루종일 라디오를 듣는다. 뉴욕 양키스 야구 경기의 중계방송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단편 ‘5만 달러’와 ‘살인자’에서 권투 선수를 등장시켰다. 권투에 열광했던 헤밍웨이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소재였던 셈이다.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이웃 일본의 작가들이 스포츠를 문학에 버무리는 솜씨는 탁월하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장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야구라는 현상을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야구가 사라져버린 미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카프카의 작품을 보면서 경기 내용을 추정하는 등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축구광인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활약 중인 일본의 플레이메이커 나카타 히데토시와의 대담집 ‘문체(文體)와 패스의 정도(精度)’를 펴냈다.

나카타와 절친한 그는 나카타를 모델로 한 축구 소설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에서 스포츠는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시공사가 운영하는 웹진 ‘부커스’가 월드컵을 맞아 마련한 좌담에서 소설가 김별아(33) 시인 문태준(32) 소설가 김경욱(31)씨 등 젊은 문인들은 스포츠와 우리 문학의 상관 관계를 토론했다.

이들은 스포츠가 아직까지 우리 문학에서 낯선 소재라는 데 공감하면서, 일상이 돼버린 스포츠를 문학의 질료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욱씨는 우리나라에서 스포츠소설이 나오지 않는 데 대해, 유럽이나 미국처럼 일상의 얘기를 담아내면서 자연스럽게 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소설에는 야구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게 일상과 섞여 얘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삼촌과 몇 년 전에 양키스 경기를 보러 갔다’는 식으로 작품 속에 스포츠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화법은 아직까지 구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최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축구 전쟁’을 발표한 김별아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무거운 것을 가볍게 또 가벼운 것을 무겁게, 경계를 없애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태준씨는 문학인에게 스포츠는 여전히 떠도는 기호 또는 숨어서 즐기는 유희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고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스포츠를 거론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자의식은 여전하다.”

그는 월드컵을 맞아 스포츠가 상징하는 정치ㆍ문화적 기호의 문제를 토론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밤늦도록 축구 중계를 보고 함께 울고 웃는 것. 스포츠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일상이다.”

이런 솔직한 일상성을 발견하는 작업이 우리 문학의 다양성과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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