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의 신 황제(黃帝) 다음에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신은 남방의 신 염제(炎帝) 신농(神農)이다.신화에서 신의 이름은 곧 그 신의 능력이나 특징을 말해 준다. 황제가 흙의 신이라면 신농은 ‘불꽃의 임금’(炎帝)이라는 다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의 신이다.
한(漢) 나라 때의 책인 ‘백호통’(白虎通)에서 신농은 태양신으로 규정되기도 하고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남방의 불의 작용을 지배하는 신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염제와 아울러 신농이라는 이름은 그가 불의 신임과 동시에 농업의 신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의 생김새가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였다는 이야기는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신농의 탄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그가 하늘에서 내려와 곧장 땅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설이다.
두 번째 설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여등(女登)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소전(少典)이라는 임금의 왕비였다.
그녀가 화양(華陽)이라는 곳엘 놀러 갔다가 신비스러운 용을 보고 난 후 임신을 해서 낳은 것이 신농이라는 이야기이다.
인간 여인이 신령스러운 동물이나 거인 등을 만나 그 기운에 의해 임신을 하고 훌륭한 존재를 낳는다는 이야기는 중국신화에서 신이나 영웅의 탄생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한다. 신화학에서는 이를 감생신화(感生神話)라고 부른다.
감생신화는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만 알 수 있었던 모계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신농의 탄생신화는 또한 신농이 태양신임을 암시하는데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놀러갔던 곳이 ‘화려한 햇볕’(華陽)이라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신농은 이렇게 태어났다.
신농 이전의 옛날 사람들은 대개 사냥을 해서 짐승의 고기만을 먹고 살았다. 그런데 신농 시대 무렵 인구가 늘어나면서 짐승이 부족하게 되었다.
신농은 백성들이 굶주려 하는 것을 보고 농업을 발명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몇 가지 설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신농이 식량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곡식의 비가 내렸다고 한다. 신농이 그것들을 심어 비로소 농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당시 몸 빛이 붉은 새 한 마리가 주둥이에 아홉 개의 이삭이 달린 벼를 물고 나타나 그것을 땅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신농이 그것을 주워 밭에다 뿌렸는데 그 쌀을 먹은 사람들은 늙어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류가 신농의 시대에서야 비로소 수렵채취의 단계에서 농업의 단계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불은 농업과 어떤 관련이 있길래 신농은 두 개의 신성을 함께 지니게 되었을까?
처음에 농사는 경작지가 없었기 때문에 산에 불을 질러 화전(火田)을 일구어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불의 신이 농업의 신과 동일시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신농은 태양신이기도 한데 태양이 작물의 생장을 주관한다는 사고가 신농으로 하여금 농업의 신도 겸하게 하였을 것이다.
붉은 새가 벼 이삭을 물고 날아왔다는 이야기도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붉은 새는 불의 신인 신농의 사자임을 암시하고, 많은 곡식 중 벼 이삭을 물고 온 것은 도작(稻作) 농업이 강남 지역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신농은 남방의 신이기 때문이다.
신농은 의약(醫藥)의 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한의학을 창시한 신인 셈이다. 신농은 우선 어떤 풀이 인간에게 이롭고 해로운지를 감별해 내었다.
진(晉) 나라 때에 지어진 ‘수신기’(搜神記)에 의하면 신농에게는 신비한 붉은 채찍이 있었는데 이 채찍으로 풀을 한번 후려치면 그 풀의 독성의 유무와 맛, 특징 등을 다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농은 모든 풀이 어떠한 약효가 있는지를 파악하여 인간의 병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한의학의 고전으로서 모든 한약재를 분류, 기록해 놓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는 책은 신농의 이러한 신화적 행위를 기려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신비한 붉은 채찍 같은 것은 없었고 신농은 매일 직접 풀을 씹어서 맛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농은 자주 독초에 중독되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에 차 잎을 씹으면 해독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의 효능을 신농 신화에 기대어 강조한 것이리라.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신농이 그만 단장초(斷腸草)라는 풀을 맛보다가 창자가 끊어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는 신농 신화가 민간에서 전설로 변하면서 신농을 지나치게 인간화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신농이 이외에도 인간을 위하여 행한 중요한 업적으로는 시장을 개설한 일이 있다. 사람들이 편하게 물건을 바꾸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일정한 장소에 시장을 열도록 한 것이다. 태양신인 신농은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왔을 때를 시장을 여는 시각으로 정하였다.
그때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재물을 가지고 오게 하여 교역을 행하도록 하였다. 신농이 시장을 개설하였다는 것은 고대의 농경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진입하여 초보적으로 도시가 형성된 현실을 반영한다.
신농은 한(漢)나라 때에 만들어진 신들의 계보에서 남방을 다스리는 지역신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중앙을 다스리는 황제보다도 일찍 등장하여 인류 문명의 초기에 많은 공적을 끼쳤던 위대한 신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역신으로 격하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후배 신인 황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신농은 황제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벌였는데 한번은 신농 자신이 휘하의 신들을 거느리고 판천(阪泉)이라는 곳에서 싸웠고 또 한번은 신농의 후계자인 치우(蚩尤)가 탁록( 鹿)이라는 곳에서 싸웠다.
이 두 차례의 전쟁에서 패한 신농과 치우의 신족(神族)은 그들이 원래 거주했던 대륙의 중심부에서 쫓겨나 남방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신농은 비록 남방의 지역신이지만 황제보다 앞서 대륙을 지배했던 관계로 그의 후손 중에는 유명한 신들이 많으며 중국 및 주변 민족의 시조나 영웅들 중에도 그의 자손이 많다.
예컨대 불의 신 축융(祝融)과 물의 신 공공(共工), 땅의 신 후토(后土)와 시간의 신 열명( 鳴) 등이 모두 그의 자손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농에게는 딸이 넷 있었는데 이들 여신은 제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후세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령 소녀(少女)는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을 따라가 도를 닦았고 적제녀(赤帝女)는 뽕나무의 신이 되어 살다가 승천했으며 요희(瑤姬)는 무산(巫山)의 신녀가 되어 초(楚) 나라의 회왕(懷王)과 사랑에 빠졌고 여와(女娃)는 동해를 건너다 빠져 죽어 새로 변신한다.
신농의 딸들에 대한 이러한 구성진 이야기들은 신농이 엄숙하기만 한 황제와는 달리 로맨틱하고 정감 있는 신이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대륙에서의 패배자인 신농은 주변 민족에게 인기가 높다. 월남의 개국신화에서 신농은 민족의 시조신으로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신농은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손에 벼이삭을 든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신농의 신화적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국에는 이러한 생동적인 신농의 그림이 없다. 신농은 이미 인간화되어 의젓한 임금님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인류를 위해 그토록 좋은 일을 많이 했던 신농, 그러나 신농은 별다른 이유없이 황제에게 지존의 자리를 물려주고 만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우라노스나 크로노스가 각기 젊은 신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너무 탐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비롭고 베풀기 좋아하는 신농이 황제에게 축출된 것은 무언가 부당한 것 같고 억울한 느낌이 든다.
이 느낌, 그것은 한(恨)과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의 한의 정서가 멀리 신농의 심정에 뿌리를 대고 있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 ‘백호통’(白虎通)
‘백호통의’(白虎通義)라고도 하며 1세기경 후한(後漢)의 역사가인 반고(班固)에 의해 편찬된 책이다.
본래 이 책은 한(漢) 나라 때에 경전 해석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초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매우 방대하여 조정의 의례와 법도에 대한 것으로부터 민간의 풍속과 전설에 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포괄한다. 고대 중국의 사상 뿐만 아니라 민속 방면의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 ‘수신기’(搜神記)
4세기 경 동진(東晋)의 간보(干寶)가 편찬한 책으로 중국 고대의 신화적 인물들과 사건들, 당시 민간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과 신비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수신기’는 모두 20권으로 그 중에는 간보 자신이 직접 서술한 것도 있고, 다른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채록한 것, 후대의 문인에 의해 덧붙여지거나 개작된 내용도 포함된다.
한국 일본 월남 등 동아시아 설화문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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