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모든 스포츠 가운데 사람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종목은 단연 축구다. 축구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훌리건'이 축구에만 몰려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미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축구 강국의 마니아들은 축구 그 자체에 미친다. 반면 한국처럼 '사대주의 콤플렉스'가 강한 나라의 사람들은 축구 그 자체에 미친다기 보다는 축구를 통한 국위 선양, 즉 민족주의적 의미에 미친다.
지금 축구의 '광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지금 나는 그것을 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지난달 26일 한국 대 프랑스 시합을 시청하다가 어찌나 소리를 크게 질러댔던지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내 딸로부터 '아빠 미쳤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다.
축구의 '광기'가 말해주는 건 무엇인가? 도대체 그물로 만들어 놓은 그 큰 구멍에 공 하나 넣는 게 무어 그리 큰 일이라고 모두 다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가?
이는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만은 아니며 감성적인 동물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우리는 의외로 그 단순하고도 분명한 사실을 다른 영역에선 폄하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서 떠돌아 다니는 모든 비판을 잘 살펴 보시라. 모두 다 이성의 잣대다. 감성은 늘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비판된다.
아니 비판을 열심히 해서 감성이 극복되고 이성 위주로 이 사회가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다. 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게 돼 있다.
왜?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성 개조'를 하자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감성도 사회과학적 논의의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거판을 보자. 이것 역시 미쳐 돌아가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엔 개인과 집단의 탐욕은 물론 경쟁자에 대한 증오까지 가세해 '광기'의 강도가 월드컵의 그것을 능가한다.
물론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선거의 원래 의미를 훼손하고도 남을 정도다.
정치학 교과서나 선거를 다룬 책들을 펴 보자. 오직 이성의 문제에 관한 논의만 있을 뿐 감성의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선거 관리'도 어떻게 하면 감성적 요소를 억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감성은 늘 음성적으로만 작동하는 괴물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감성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기존의 '억제' 방식으로는 '깨끗한 선거'는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성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을 누르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제가 몰고 온 '노무현 바람'을 당파적 관점을 떠나 그것이 선거는 물론 한국 정치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월드컵 기간 내내 '광기'를 마음껏 발산하되 '감성 코리아'의 긍정성을 살리는 쪽으로 애써 보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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