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현장으로 향하는 길은 청명했고 막힘이 없었다.한국축구대표팀이 폴란드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3일 부산에 입성했다. 이날 오전 11시 베이스 캠프인 경주를 떠난 대표팀이 약속의 땅 부산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30분께.
복장은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선수들의 표정도 날씨만큼 밝아 보였다. 안정환과 송종국은 “월드컵이 시작됐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며 밝게 웃었다.
선수들은 이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언론과의 접촉 자제를 지시한 히딩크 감독의 뜻에 따랐다.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 전을 앞두고 선수들의 각개전투보다 자신의 입을 통해 하나의 소리를 전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부산으로 떠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나는 한국의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에너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히딩크 감독은 “당신이 틀렸다”고 민감하게 따지고 넘어갔다. 팀의 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항해 경험이 풍부한 히딩크 감독은 대사를 앞두고 선수들의 사기를 좌우하는 외풍을 막는 한편 내부의 들뜬 분위기도 가라앉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선수들이 요즘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전을 하루 앞두고 히딩크 감독에 닥친 가장 큰 걱정거리는 훈련 중 왼쪽 종아리를 다친 이영표(안양) 문제다. 이영표의 갑작스러운 부상은 선발 라인업을 짜는 데도 영향을 미쳤고 자칫 10일 미국과의 경기에까지 여파가 미칠 수도 있다. 히딩크 감독의 지시로 이영표는 이날 부산행 버스에 오르는 대신 경주에 남아 조속한 부상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오후 6시. 한국선수들이 지난 달 16일 스코틀랜드전 때 밟았던 바로 그 그라운드였다. 4_1 대승. 선수들의 머리 속에는 통쾌했던 그때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볍게 몸을 푼 선수들은 센터링과 슈팅 훈련을 실시했다. 경기 하루 전이라 강도는 높지 않았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숙소인 부산 메리어트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그리고 휴식시간. 이제 24시간 뒤면 결전의 장으로 나서는 선수들의 얼굴에 서서히 비장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간이 큰 선수들이라도 긴장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한국팀의 출정 전야는 그렇게 깊어 갔다.
부산=월드컵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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