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과 경제계를 휩쓴 스캔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정치 권력이 경제 활동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정치 권력이 기업이나 경영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기업이나 경영자로서는 정치권과 거래할 수밖에 없다.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며 정의감을 과시하기 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업이나 경영자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앞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정치권이 경제에 부당하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정치권에서 경제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일이 허용되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포철이 개입된 것이 알려지면서 논의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철에 주인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 포철 경영진의 처사를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정치권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아닌 포철의 소유지배구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억지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정치ㆍ경제 환경에서는 어느 기업, 어느 기업인이나 정치권과 거래하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위 '주인 있는 경영체제'의 주인인 재벌들이야말로 정치권과 많은 거래를 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에 언급되고 있는 기업들도 포철을 제외하면 재벌을 포함하여 모두 소위 '주인 있는 경영체제'가 지배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러한 주장의 뒤에는 혹시 정치권과의 거래를 자신들만이 독점하고자 하는 일부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시장과 거래할 수 있는 지위를 일부에서 독점하여 그 이득을 그들만이 누리게 된다면 이는 정치, 경제 양 부문에 있어서 시장의 왜곡을 심화 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왜곡된 '주인 있는 경영론'의 뒤에는 포철과 같이 소위 '주인이 따로 없는 기업'이 성공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또 다시 정부로 하여금 시장에 개입하도록 하여 소수 특정인만이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주인 역할을 인위적으로 맡을 수 있도록 하려는 속셈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과연 '주인 있는 경영체제'가 무엇인가. 어떤 기업이 한 사람에게 100% 소유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이 기업의 주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 선 오늘날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대기업의 운영에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한 개인이나 집안에서 주인이 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다수의 투자자가 소유하는 주식회사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해 진 것이다. 다수의 주주가 있는 기업은 주인이 다수이기 때문에 특정인이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다수의 주인이 있는 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인에게 인위적으로 주인 노릇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주 전반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투명한 지배구조의 확립이다.
즉 '주인 있는 경영체제'의 올바른 정의는 특정인에게 인위적으로 주인 역할을 맡기는 체제가 아니라 주주 전반의 이익을 위한 지배구조인 것이다.
대기업에 선진화된 소유지배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 경제 최대의 과제이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인위적으로 주인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두자는 것은 자본주의를 포기하고,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로 볼 때 머지 않아 자본주의 정착과 정치 개혁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않을 것이다.
아직도 자본주의의 정착을 방해하고, 돈과 권력을 자신들만이 독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철은 기죽지 말고 선진 소유지배구조를 정착시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남일총 KDI대학원 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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