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이주일(57)북한에 납치될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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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57)북한에 납치될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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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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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드컵 중계를 보면 때로는 방송 공해라는 생각이 든다. 평가전 때부터 느꼈던 것인데 몇몇 축구 해설자들의 말이 너무 많다.TV 중계라는 것은 시청자가 직접 눈으로 경기를 보면서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약장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해설자들의 말이 쓸데없이 많다.

2, 3시간 동안 중계를 해야 하는 마라톤이라면 이해가 간다. 똑 같은 화면이 계속 나오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놔둬도 재미있는 축구를 중계하면서 왜 한강 개발의 역사까지 들먹거리는지 그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무슨 의학박사나 경제학박사가 된 것처럼 잘난 체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

사람은 잘난 체를 하다가 결국 망하는 법이다. 내가 이렇게 중병이 든 것도 다 내가 술에 관한한 너무 잘난 체를 했기 때문이다.

“술에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랑하다가 이렇게 됐다. 내가 지금까지 마신 술병을 고속도로에 죽 늘어놓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고도 남을 것이라는 게 아내의 말이다.

오늘은 내가 북한에 납치될 뻔한 사연을 이야기하겠다. 물론 내가 직접 겪었거나 확인한 것은 아니다.

1996년 6월 SBS ‘이주일의 투나잇 쇼’에 초대손님으로 나온 고 이한영(李韓永)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일(金正日) 북한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成惠琳)의 조카다. 한마디로 김정일이 그의 이모부이다.

그런 그가 TV에 나와 “선생님, 하마터면 신상옥(申相玉) 최은희(崔銀姬) 부부처럼 북한에 납치될 뻔하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金正男)이 4, 5세 때 TV를 보다가 갑자기 아버지를 졸랐다.

“저 사람, 이주일 데려다 줘.” 내가 한창 이름을 날리던 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때 김정남은 내가 출연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면서 나의 팬이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수소문해 그럴듯하게 분장시켜 아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린 김정남이 단번에 “그 사람 가짜야”라고 말한 것이다.

이한영씨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당시 북한에서는 이 선생님 팬이 많았다”며 “이주일을 보여달라는 김정남을 달래느라 김정일이 아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나는 이후 근 1년 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내가 북한에 납치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씨가 이 말을 들려준 후 8개월 여 만인 97년 2월 자신의 아파트 현관 앞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더욱이 그의 분당 서현동 아파트는 내가 사는 분당 율동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이러다 나도 혹시 어떻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이렇게 끔찍한 추억도 있지만 ‘이주일의 투나잇 쇼’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다.

100회씩이나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는 이씨를 비롯해 최명재(崔明在) 파트퇴르유업 회장, 안병균(安秉鈞) 나산그룹 회장 등 한마디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줄줄이 출연했다.

비록 중소기업 사장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나도 그만한 자격이 있다. 출연 좀 시켜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애는 먹었지만 ‘이주일의 투나잇 쇼’를 진행하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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