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모 당의 정당연설회가 열린 경기 부천 북부역 광장. 당 지도부가 대거 지원유세에 나섰으나 분위기는 썰렁했다. 연설회에 모인 청중은 300여명. 그나마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 연설이 끝나면 썰물 빠지듯 유세장을 떠났다.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35)씨는 “월드컵 대표 선수가 오면 모를까 누가 되든 관심 없다”며 “모여 있는 사람 대부분이 동원된 사람일 것”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20대 여성은 “친구들끼리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며 “연설회가 열리면 시끄러워 짜증난다”고 말했다. 50대 김모씨는 “농사철이라 한참 바쁜데 선거는 무슨 선거냐”며 손사래를 쳤다.
6ㆍ13 지방선거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공식 선거전에 돌입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유권자의 무관심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월드컵 축구가 온 국민의 시선을 잡고 있는 데다 연말 대선에 비해 관심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또 현 정치권에 대한 불신ㆍ혐오와 시기적으로 농사철이 겹친 것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이대로 가다간 투표율이 전국 단위 선거로는 처음으로 50%를 밑도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중앙선관위가 5월20,21일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은 42.7%에 불과했다.
선관위는 1998년 6ㆍ4 지방선거 당시 67.4%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했으나 실제 투표율은 52.6%에 그친 점을 감안,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관위와 각 정당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저마다 비상이 걸렸다.
선관위는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가수 장나라씨를 공명선거 홍보대사로 위촉한 데 이어 여성댄스 그룹 ‘베이비복스’‘SES’ 등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공익광고와 홍보만화를 제작,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또 ▦홈페이지ㆍ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한 투표 절차 안내 ▦114 안내전화 ▦방송사 자막ㆍ멘트 ▦노인회ㆍ장애단체에 모의투표소 설치 등 다양한 홍보전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투표하고 축구보자’는 표어를 내걸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율이 낮아질 듯하면 후보들이 자신의 주변만 챙기면 당선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돈 선거 등 불법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유권자 투표참여를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정당연설회장과 시장, 공원 등에서 지지층의 투표 참여를 적극 호소하고 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도 가는 곳마다 “여기 온 분들이 집에 가서 투표당일 10명씩 손 잡고 투표하러 나와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투표율이 낮으면 결속력이 높은 민주당 표와 큰 격차를 벌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20~40대 유권자를 끌어오기 위한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후보 등이 시민들과의 월드컵 경기 관람을 통해 일체감을 조성하는 한편, 네티즌과는 화상 채팅을 통해 당 소속 후보 지지를 권유하고 있다.
또 386세대인 당내 현역 의원과 원외위원장으로 ‘3040유세단’을 구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투표권 행사를 독려하고 있다. 자민련은 선거지역이 충청권에 국한된 탓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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