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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2>제2부(5)사법왕국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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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2>제2부(5)사법왕국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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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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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브랜다이스 판사도 신은 아니었구나!” 한참 전에 서울에서도 상영된 미국 영화의 한 장면이다. 퇴근길의 대법원 청사 앞, 눈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노판사의 모습을 목격한 어느 청년의 중대한 발견이다.“아홉 명의 늙은이가 나라를 망치는구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탄식이다. 그는 나라를 불황의 늪에서 구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뉴딜 정책을 수립했다. 그런데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의회가 제정한 각종 사회 경제 입법을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선언하지 않는가.

대통령의 분노와 탄식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그렇지만 판사를 자리에서 쫓아낼 수 없다. 아무리 잘 못되어도 법원의 판단은 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사법왕국 미국의 면모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뒤에는 연방대법원이 있다. 대법원은 헌법의 해석권을 가진다. 대법원이 헌법의 해석을 통해 내리는 판결이 곧바로 최고의 정치규범이 된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누가 미국의 대통령인가.

몇 달에 걸쳐 선거법과 헌법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부시를 승자로 선언한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마감되었다. 고어는 즉시 판결에 승복했다. 만약 그가 승복하지 않았더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헌법과 연방대법원에 대해 미국 국민이 보내는 신뢰와 존경은 가히 종교의 수준이다.

건국 초기부터 종교적 전통이 뿌리 박았지만 일찌감치 정교분리의 원칙을 세운 미국에서는 헌법이 사실상의 종교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 국민에게 헌법은 민주주의의 경전이고 판사는 경전의 의미를 설교하는 성직자나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연방대법원에 판사 한 사람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나라 전체가 요란스러운 것이다.

연방판사는 종신직이다.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를 얻어 판사를 임명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대변할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려고 한다. 자신은 기껏해야 8년 동안 재직할 수 있을 뿐이기에 퇴임 후에도 대리인의 판결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상원은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자를 상대로 철저한 인준청문회를 연다. 판사로서의 도덕성은 물론 사법철학까지도 철저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 국민 전체가 검증절차에 동참한다. 이렇듯 범국민적 인준절차를 거쳐 임명된 대법관은 권위와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된다.

이렇듯 판사는 지극히 ‘정치적’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일단 임명되면 종신재직권이 보장되기에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헌법재판은 단순한 실무재판이 아니라 정책재판이다. 그러기에 판결의 기준은 문제된 사건의 당사자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가 아니라, 해당 판결이 미국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에 관한 판사의 사상과 철학인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명작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법원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은 종국에는 소송으로 발전한다’는 그의 경이로운 감탄 속에 수출상품으로서의 미국적 민주주의의 한계가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지구상에 ‘미국은 예외’라는 미국주의(Americanism)의 담론이다. 담론의 귀착점은 법원이 다스리는 나라, 판사가 움직이는 미국은 결코 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 땅을 벗어나는 순간 변질되고 부패하기 십상인 토속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어느 독일 학자의 표현대로 미국인이 창안한 대통령제가 2차대전 후 탄생한 신생국가에게 ‘죽음의 키스’를 선사하였듯이 사법부가 주도하는 미국형 민주주의는 정치적 토양이 판이하게 다른 나라에 결코 정착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가 들 수 있다.

토크빌처럼 입법, 행정에 비해 사법을 부수적이고도 보충적인 국가 기능으로 인식하는 유럽과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미국은 사법권이 지나치게 비대한 나라이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미국의 사법권은 견고한 헌법의 틀과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1989년 헌법 제정 2세기를 기념하여 미국 정부가 발간한 공식 팜플렛은 ‘미국헌법-그 미묘한 균형의 문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미국의 정치와 법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권력분립의 원리이다. 모든 권력은 속성상 부패할 소지를 안고 있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만 전체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입법, 행정, 사법 국가의 3부처 중에 가장 힘이 약한 사법부에 별도의 권한을 주어야만 다수의 이름으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저지르는 독선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법왕국, 미국의 핵심적 속성인 위헌법률 심사제도이다.

도대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아니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법원이 어떻게 민주적 원칙에 의해 구성된 기관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 시행한 조치를 거부할 권한을 가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권력이 남용되는 경우에도 사법부는 ‘가장 덜 위험한’ 부처이다. 사법의 속성상 먼저 나서서 국민에게 적극적인 피해를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에 대한 불신과 경계, 그것은 독립혁명 당시부터 미국 국민의 정치철학이자 좌우명이었다. 영국의 정치제도는 국왕과 의회가 결합한 권력통합의 제도였다. 흔히 인용되는 말대로 영국 의회는 남녀의 성별을 바꾸는 일을 제외하고는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보유했다.

그런 통합적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국민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인의 신념이다. 연방과 주 사이의 엄한 분권도 이러한 신념의 발로이다. 2차대전 후 독일과 일본의 헌법 제정에 관여하면서 미국이 유념한 내용은 단 하나, 절대권력의 출현 방지였다.

사법권이 빛나는 미국 민주주의의 원천은 배심제에 있다. 배심제는 사법관으로서의 판사의 권한과 역할을 묶어둔다. 피고인이 죄를 범했는가, 또는 채권자 채무자 중에 누구의 말이 옳은가는 배심이 판단한다. 배심제는 관료사법제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려니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직접 사법제도의 운영을 주도한다는 사법주권의 발로이다.

이렇듯 미국의 정치제도, 사법제도는 특수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느냐를 두고 고심한 200여 년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 세계 인류에게 중대한 판단자료를 제공한다.

안 경 환 (安京煥) 서울대 법대 학장ㆍ한국헌법학회 회장

■아메리카 핸드북 / 美 연방대법원의 변화

‘9명의 현인’으로 불리는 미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의 종신 대법관들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 보수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판결을 통해 사회를 개조하려는 ‘사법 적극주의’에서 소극주의로 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구성원도 카리스마적 인물에서 조용한 무명 인사로 채워져 가는 추세다.

전후 미 대법원은 얼 워렌(1953~69년) 워렌 E 버거(1969~86년) 윌리엄 H 렌퀴스트(1986~) 등 대법원장의 성향에 따라 시대별로 구분되면서 진보에서, 중도, 보수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16년 간 지속된 ‘워렌 법정(Warren Court)’은 많은 진보적 판결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슈퍼 치프’로 불린 워렌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뒤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아이젠하워 당선에 기여한 공로로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재임기간 중에는 54년 공립학교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브라운 사건, 64년 명예훼손에서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요건을 규정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등에서 진보적 판결을 끌어냈다.

‘버거 법정’도 13년 간 사회에서의 ‘적극적 차별폐지 운동(Affirmative Action)’과 보조를 같이하는 판결로 명성을 날렸다. 이 시기 판결들은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이 주도해 브레넌 법정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공화당 정부가 사법부의 진보적 성향에 제동을 걸기 위해 노력하고 88년 앤서니 케네디가 임명됨으로써 보수 성향 법관이 5명에 달해 세가 역전됐다.

렌퀴스트 현 대법원장은 레이건이 임명한 인물로 정치에서 사법부의 역할을 억제하는 데 주력해 왔다. 공공정책보다는 인터넷 규제에 대한 위헌 판결 등 개인적 권리를 중시한다. 공화당의 ‘작은 정부’ 이념에 부합하는 노선으로 평가된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렌퀴스트와 안토닌 스칼리아, 케네디 등은 보수적인 판결을 하고, 클린턴이 임명한 루스 긴스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 등이 중도적 진보 판결, 샌드라 데이 오코너, 데이비드 수타 등이 사안별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거처럼 사회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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