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빌딩 매매시장이 외국계 자본에게 상당부분 장악돼 거래가 위축되는 등 외국인 큰손의 파워가 현실화하고 있다.광화문과 강남, 여의도 등 서울 노른자위 지역의 주요 오피스빌딩이 부동산투자회사 등 외국계 자본의 수중에 속속 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과 자본들이 최근 경기호전으로 오피스빌딩을 매입하려 해도 외국계의 벽에 부딪치는 등 일부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외국계의 빌딩 점령 가속화
4월 서울 종로구 서린동 갑을빌딩까지 모건스탠리에 팔리면서 광화문 일대는 사실상 ‘외국인 소유 빌딩 숲’으로 변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시청 뒷편의 코오롱빌딩을 625억원에 사들였고 한누리빌딩, 은석빌딩, 현대해상 무교동사옥을 매입하는 등 빌딩 매수에 가장 적극적이다. 싱가포르투자청도 서울파이낸스센터(3,550억원)와 옛 아시아나빌딩을 손에 넣었다.
강남과 여의도도 마찬가지. 호주계 자본인 론스타는 역삼동의 현대산업개발 소유 아이타워를 6,630억원에 인수해 스타타워로 이름을 바꿨다. 네덜란드계 뮤추얼펀드 로담코는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빌딩을 1,250억원에 매입했다.
여의도에서는 증권가에 위치한 동양증권, 대우증권, SKC빌딩, 고려빌딩 등이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부동산 정보업체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25개의 대형 빌딩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으며 매각규모는 2조7,24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60조원에 달하는 서울시내 11층 이상 오피스빌딩 시장 규모의 4.4%에 불과하지만 대형빌딩의 경우 매매거래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계가 사실상 시장을 싹쓸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알투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4년간 시장에 나온 빌딩 매물은 3조원 가량으로 이 가운데 98년 이후 대형 빌딩은 거의 100% 외국계 자본으로 넘어간 셈”이라고 말했다.
■사무실 임대시장까지 장악
빌딩을 사들인 외국계 자본은 임대를 통해 크게 재미를 보고 있다. 알투코리아가 매매가격 400억원 이상, 연면적 3,000평 이상 서울시내 빌딩 48개를 대상으로 매입가격 대비 연간 임대료 수입을 조사한 결과 외국인 소유 빌딩의 연간 수익률이 10.62%로 내국인 소유의 8.9%를 월등히 앞섰다.
경기호조로 사무실 수요가 늘어나 국내기업 및 자본도 대형 빌딩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매물자체가 없어 거래가 위축되고 있다.
최근 강남 로담코타워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나돌아 국내 기업들이 매입을 추진했지만 로담코는 끝내 협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의 궁극적 목적은 투자수익에 있기 때문에 적정한 가격이다 싶으면 언제라도 팔고 나갈 것”이라며 “결국 언젠가는 국내기업이나 자본이 높은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외국자본에 시세차익만 챙겨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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