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백과사전편찬부장을 맡고 있을 때다.88 서울올림픽 개최 전에 적어도 사전 1책 이상을 낸다는 것이 당시 우리의 목표였다. 그러나 사전편찬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났는데도 학계로부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그치지 않았다.
학계 뿐 아니라 언론도 그랬다. 하는 수 없이 나는 KBS MBC 저녁 9시 뉴스시간에 나가서 국민을 향해 말했다.
"브리타니카 사전이 하루아침에 나왔느냐? 오랜 세월 동안 수정 보완해 훌륭한 사전이 된 것이다. 우리의 문화수준이 민족대백과사전을 낼 만하니 시작한 김에 내야 한다. 모자라는 것은 보완하고 틀린 곳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협조해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했다.
그랬더니 반대 여론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출판 입찰 때 또 어려움이 닥쳤다. 원고 입력을 한 S신문사를 비롯해 굴지의 출판사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출판비가 55억원이나 되는 광복후 최대의 인쇄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조달청에 넘겨 공개경쟁입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조달청에서도 계속됐다.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와 잘못하면 조달청장의 목이 달아날 처지니 못하겠다는 것이다.
담당국장을 만나 "백과사전 발간은 문화올림픽이다. 88올림픽때 우리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것은 체육올림픽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금 입찰신청을 받지 않으면 올림픽전에 출판이 불가능하다. 국익차원에서 입찰을 받아 달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고 반 압력을 넣었다.
마침 청와대에서 사람이 왔다. 전두환 전대통령 퇴임 전에 사전 1책을 내고 맨 앞에 대통령의 사진과 발간사를 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모양새도 좋지 않거니와 시간상으로도 어려워 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난 김에 조달청에 전화해 사전출판 입찰요구서를 받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입찰에 들어갔고 출판협동조합에 낙찰되었다. 삼화인쇄소를 비롯한 여러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인쇄했다.
간신히 88올림픽 때 사전 첫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발간사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 썼다. 되돌아 보면 세계 최대의 단일민족대백과사전을 내는데 따르는 '산통'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일 자체보다는 공명심이나 몸보신에 치중하는 풍토가 그렇게 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첫 책이 나왔을 때의 보람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다.
/이성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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