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분의 1을 찾아서.월드컵이 개막되면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에는 한밤중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밀봉된 시료가 속속 도착한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캐나다의 ‘인간탄환’ 벤 존슨 선수의 약물 복용을 잡아내기도 한 이곳은 보조연구원을 포함한 10여명의 연구원이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면서 ‘약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흔히 도핑은 분석기술의 최고로 꼽을 정도로 정교하고 복합적인 작업이다.
보통 약물검사가 한 번의 분석으로 2~3가지 성분의 유무를 판별하는 데 비해 도핑분석은 무려 30여가지가 넘는 성분을 10억분의 1인 ng/㎖단위까지 가려내야 한다.
수만종의 화합물이 섞여 있는 소변이나 혈액에서 필요 없는 성분을 제외하고 검사 대상이 되는 약물만을 추출한 후 농도에 민감한 분석기기에 넣기 위해 시료의 정확한 농도를 맞추어야 한다.
분석장비 활용도에 있어 일반 약물검사가 30~40%라면, 도핑테스트는 90%에 육박할 정도다.
■도핑테스트 어떻게 하나
경기 종료 15분전 무작위추첨을 통해 한 팀에서 두 명을 뽑아 종료 직후 소변을 채취한다.
검사 결과는 24시간 내에 선수에게 통보되며, 금지약물이 발견되거나 특정 약물이 허용치를 넘어 발견되면 출전금지 등 처벌을 받는다.
적발대상이 되는 약물은 무려 140여가지. 88올림픽 당시에는 72종에 불과했다. 약물은 성분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통증과 불안을 해소시켜 준다는 마약성 진통제, 피로를 덜 느끼게 해주는 흥분제는 전통적인 금지약물이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축구신동 마라도나에게서 검출돼 그를 도중 귀국케 했던 흥분제 에페드린은 감기약의 주성분이기도 해서, 사실 선수들은 감기약 한 알도 의사의 세심한 처방을 받아 복용해야 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도 역시 흥분제로서 과다섭취가 금지된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근육강화제는 최근 그 종류와 사용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경우 복용사실을 숨기기 위해 여성호르몬과 비율을 맞춰 투여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인공호르몬과 천연호르몬은 방사성동위원소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여지없이 집어낸다.
혈압을 내리고 맥박 수를 감소시킨다는 베타차단제는 사격이나 양궁에 필요한 안정효과를 얻거나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을 덜기 위해 남용되는 안정제.
복용한 약물을 빨리 배출시키기 위해 이뇨제를 쓰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혈액검사까지 병행한다. 마라톤이나 축구 등 주로 ‘뛰는’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산소공급 능력을 늘리기 위해 혈액을 체내에 주입하거나 빈혈치료제로 사용하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 같은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질은 감염성 질환이나 순환계에 쇼크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는 이 약물 복용으로 세 명의 선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대표팀에 장뇌삼, 오가피 등 보약의 기증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방이나 천연약재도 안심할 수 없다.
이뇨 효과가 있다는 마황이나 인삼, 잉어 등을 재료로 해 만든 각종 엑기스나 복합영양제에 에페드린 같은 금지성분이 함유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수단은 KIST의 분석을 반드시 거친 후에야 이런 식품들을 복용할 수 있다.
올림픽의 경우 출전 선수 가운데 평균 2~3%가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은 4월 실시한 검사에서 전원 음성판정을 받았다
KIST 도핑컨트롤센터 책임연구원 명승운 박사는 “도핑은 결코 적발을 위한 적발이 아니다.
경기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의 복용을 경고함으로써 페어플레이에 일조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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