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 받던 언어실력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왔다.’한국외대 포르투갈어 3년 김모(22ㆍ여)씨는 대학에 들어온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시 월드컵상황실에서 포르투갈어 통역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짬을 내 포르투갈 어휘들을 공부하느라 눈 코 뜰 사이가 없다.
그는 “전학년 80여명 중 50여명이 포르투갈어 통역요원이나 번역 등 자원봉사에 나서 전공은 아예 조기 종강을 했고 교양과목은 자원봉사 인증서 제출로 대체하게 됐다”며 “희귀언어를 공부한 덕에 월드컵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 유고어과 이모(22)씨도 “유고어 사용국인 슬로베니아가 경기하는 대구로 곧 자원봉사를 떠난다”며 “몇 달에 1건 들어올까 말까 하던 기업체 홍보물 번역 요청도 매일 쇄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월드컵을 맞아 세계 각국 선수와 응원단 등이 대거 입국하면서 영어 일어 등에 비해 홀대 받던 희귀언어 전공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포르투갈 폴란드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들은 자원봉사, 통역, 기업 홍보물 번역 등으로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폴란드어를 전공한 정모(26ㆍ여)씨는 “폴란드어 통역 아르바이트 일당으로 최고 20여만원을 받는 반면 영어는 10만원도 채 못 되는 것으로 안다”며 “일손이 모자라 아까운 일자리를 놓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통역지원 업무를 관장하는 곽중철(郭重哲ㆍ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포르투갈어나 폴란드어의 경우 전문 통역 인력이 거의 없어 학부생들을 끌어다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희귀 언어지만 한ㆍ일 공동개최 때문에 명암도 엇갈리고 있다. 아랍계 국가 중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본에서 경기를 갖는 바람에 아랍어 전공자들은 오히려 울상이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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