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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0)들녘 기름지게 하던 '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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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0)들녘 기름지게 하던 '자운영'

입력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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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들과 전북지방을 다녀왔습니다.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주말여행을 하지 못하고 사는 까닭에, 꼭 참석하여 숲 해설을 해야 하는 행사에 무작정 가족을 동반해 떠났습니다.

휴양림에서 밤을 보내며 칠흑같이 까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 바람 따라 흔들리고 부딪히는 밤의 나뭇잎들의 소리, 숲에서 두런두런 나누던 시와 나무 이야기,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숲 속 나뭇잎 사이를 걸으며 만났던 싱그런 풀잎들.

꽉 막혀버린 길에서 지루함을 대신하여 한껏 나누었던 가족들의 목소리….

벌써 여러 날이 지났건만 그 한순간 한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어느 들녘을 붉게 물들였던 자운영 군락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저 멀리 들녘이 온통 붉은 것을 보고 차를 돌려 가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자운영이었습니다.

자운영 아십니까? 꽃이 토끼풀처럼 생겼는데 진한 분홍빛이 도는 풀 말입니다. 특히 남부지방에 고향을 가지신 분들은 그 아름다운 빛깔의 꽃무리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예전에 그리도 흔했는데 왜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논과 밭이 화학비료로 덮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운영은 고향은 중국이지만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들어와 함께 심어 심정적으로 우리 꽃이 되어 버린 콩과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농사가 끝나고 나면 자운영을 심었습니다. 그리 되면 땅이 비옥하게 변해 이듬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의 영양생장을 돕는 것이 질소입니다. 그래서 질소비료를 많이 주는 것입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가 가장 많지만 식물들이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무용지물이지요.

그것을 자운영을 비롯한 콩과 식물들의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붙어 살면서 공중에 있는 사용 못하던 질소를 쓸모있게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자운영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서로 공생합니다. 자운영에서는 광합성으로 만들어 낸 탄수화물을 얻어 쓰고 대신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하여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 질소가 비료의 역할을 하므로 보통 농사를 짓고 나서 가을이 되면 자운영 씨앗을 뿌립니다.

자운영 싹이 터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에 잘 자라 오르는 것을 갈아엎고 모를 심게 됩니다.

아름다운 자운영의 꽃 빛을 볼 수 없는 것도 아쉽지만, 금비로 죽어가는 땅이 아닌, 흙 속의 작은 박테리아와 자운영이 지혜롭게 서로 도우며 기름지게 만든 살아있는 땅에서 키웠던 그 때의 깨끗한 곡식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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