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4시10분께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마석 성생가구단지. 한 조립식 건물의 두 평 남짓한 방안에서 TV를 보던 카메룬 노동자 10명은 음모마 선수의 슟이 아일랜드의 골 네트를 가르자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며 “알레! 알레! 레 라이온!(가자! 가자! 사자들이여!)” “카메룬!”을 연신 외쳤다.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고된 장시간 노동으로 파김치가 된 육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음보마의 슛과 함께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듯 했다.
“아일랜드에게 비겨 너무 화가 납니다…” 오래간만에 좁은 방이지만 한데 모인 카메룬 노동자들은 첫 골을 지키지 못한 게 아쉬운 듯 경기가 끝났지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대표팀 선수들 얼굴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고국도 많이 변했을 텐데…” 1998년 한국에 관광비자로 들어와 불법체류 노동자가 된 팡구아(32)씨는 고향생각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팡구아씨는 사회민주전선(SDF)에서 활동하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카메룬을 탈출, 러시아에서 1년 체류하다 부인 나키(32)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격침시긴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TV로 세네갈-프랑스전을 보면서 ‘알레! 알레! 레 라이온!’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세네갈과 응원 구호가 같거든요. 우리는 다 같은 검은 대륙의 사자들이고, 프랑스로부터 60년에 똑 같이 독립했습니다.”
성생가구단지 뿐 아니라 경기 안산시, 성남시 등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지난달 31일과 1일 한결같이 세네갈과 카메룬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 이태원동에 머물고 있는 나이지리아인 수십 명도 삼삼오오 숙소에 모여 앉아 프랑스를 물리친 세네갈에 이어 카메룬이 아일랜드를 격파하고 검은 돌풍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한 나이지리아 노동자는 “아프리카는 어느 나라든 하나”라며 “아프리카 다섯팀 모두 8강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는 “아프리카 노동자 뿐 아니라 필리핀인, 방글라데시인 등 약소국 노동자들은 예외 없이 세네갈과 카메룬을 응원했다”며 “식민지 경험을 지닌 약소국 노동자들이 축구를 통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연대의 장을 창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