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아방가르드의 문화사'/마크 애론슨 지음ㆍ장석봉 옮김아방가르드 예술은 흔히 괴짜 예술가들의 별난 작품 중심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파이프 그림에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제목을 달거나, 남자 소변기를 작품이라고 전시하거나, 아무 뜻도 없는 음절들을 늘어놓고 ‘시’라고 주장하는 등 아방가르드 예술의 역사에서 만나는 어리둥절한 에피소드들은 구경꾼이나 비평가를 격분시키거나 혹은 무척 즐겁게 만들었다.
그것은 변방에서 태어나 중심부로 쳐들어간, 예술 게릴라들의 개선 행진 역사로 기술되곤 한다.
미국의 문화사가 마크 애론슨의 ‘도발-아방가르드의 문화사’(1998년 작)는 그러나 접근법이 다르다. 아방가르드의 역사를 예술 내부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ㆍ문화적 맥락에서 좀 더 폭넓게 읽고 있다.
변기를 예술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게 된 배경은 뭔지, 그러한 ‘도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등장을 1차 세계대전의 맥락에서 읽고, 소비에트 혁명 전후 러시아 전위예술의 역할과 운명을 추적하고, 마약ㆍ록ㆍ섹스로 요약되는 1960년대 미국의 저항적 청년문화를 전후 미국의 풍요와 연결해 설명하는 식이다.
이 책은 아방가르드의 선조 격인 1820년대 프랑스 파리의 보헤미안들로부터 아방가르드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진 1970년대 상황까지 다룬다.
1980년대 이후 최근 20년간의 상황 설명은 거의 생략됐으며 아방가르드 예술의 미래형은 두고 봐야 알겠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한 공백과 유보가 다소 불만스럽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만한 교양서다. 80장의 도판,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비평가 270명을 소개한 55쪽 분량의 부록도 실려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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