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 (499)朴重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 (499)朴重彬

입력
2002.06.01 00:00
0 0

1943년 6월1일 원불교(圓佛敎) 교조 박중빈이 52세로 작고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법어는 이렇다.“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俱足)이라.”

박중빈의 호는 소태산(少太山)이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서 태어났다. 10세 이전에 우주의 원리에 호기심을 품고 수도에 들어가 25세 때인 1916년 4월28일 ‘큰 깨달음(大覺)’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소태산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 질서를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원불교는 이 날을 개교일로 삼는다.

개혁불교로서의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 둥그런 원)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정각정행(正覺正行)ㆍ지은보은(之恩報恩)ㆍ불법활용(佛法活用)ㆍ무아봉공(無我奉公)의 4대 강령을 수행 지침으로 삼는다.

불상 숭배를 배격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표본으로 삼아 수행해야 한다는 소태산의 주장은 원불교가 전통 불교와 가장 큰 마찰을 빚었던 대목이다.

소태산은 또 시주ㆍ동냥ㆍ불공 같은 전통적 불교 관습을 폐지하고 각자가 생업에 종사하며 이웃의 교화에 힘쓰는 ‘생활 불교’를 내세웠다.

최고 종지(宗旨)로서의 이 일원상에서 원불교라는 교명(敎名)이 나왔지만, 소태산이 생전에 원불교라는 이름을 채택한 것은 아니다.

소태산은 1924년에 전북 익산에서 만든 ‘불법연구회’의 이름으로 자신의 불교혁신론을 펼쳤고, 원불교라는 말은 소태산이 열반한 뒤 교단을 이끈 정산종사(鼎山宗師) 송규(宋奎)가 1947년에 채택했다.

원불교의 중앙총부(中央總部)는 익산에 있다. 그 곳에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를 세운 것도 원불교 재단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