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한국축구대표팀의 마지막 훈련캠프인 경주 시민운동장.대표팀 버스가 운동장 앞에 멈춰 서자 경기장은 1,500여석의 스탠드를 가득 메운 여중고생들의 비명소리로 뒤덮였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용한 고도 경주에 이처럼 소란스러웠던 적이 없다는 구장 관리인의 한 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선수들 모두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깜짝 놀랐다"는 대표팀 주무 김대업(29)씨는 "2년전 올림픽 대표팀 이후 이렇게 열광적인 응원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축구장에 모습을 드러낸 오빠부대가 그만큼 반가웠던 것이다. 선수들끼리 대화가 통하지 않을 만큼 괴성이 이어지자 현장 관계자와 취재진은 훈련에 지장이 생길까 우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연습 도중 담담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던 젊은 선수들은 시간이 흐르며 여고생들의 환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설기현(23ㆍ안더레흐트)은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비공개훈련보다 팬들의 환호와 격려가 큰 힘이 되는 공개훈련이 훨씬 능률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이 열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프로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한데 대표팀을 향한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았다.
홍명보(34ㆍ포항)는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프로축구 열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월드컵을 유치한 의미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현영민(23ㆍ울산)은 "당연히 힘도 나고 좋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뒤 소속 프로팀에서 이런 응원을 맛볼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고 말했다.
자신의 프로 데뷔전이 될 7월 7일 정규리그 첫 경기에도 이런 열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현영민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경주에서=이준택 체육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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