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회의에서 최근 확정한 민사집행법 시행규칙은 민사 재판에서 이기고도 채무자의 재산은닉으로 판결문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던 병폐를 없애기 위한 고강도 처방을 담고 있다.채권자가 법적으로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절차는 다소 복잡하다. 재판에서 이겼는데도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채권자는 법원에 채무자에 대해 재산명시신청을 할 수 있다.
이 때 채무자는 법원에 ‘재산목록’을 제출하게 되는 데 허위신고를 하거나 아예 제출을 거부할 경우 이를 막을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다는 허점이 있었다.
재산을 은닉해 놓고 허위 신고 목록을 제출해도 증거 부족으로 처벌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탓에 ‘재산명시제’는 무용지물이 됐고, 법원은 결국 ‘재산조회제’ 라는 강제 장치를 강구했다.
법원행정처는 채무자가 법원에 제출한 재산목록이 불성실하고 채권확보액에도 미치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법원에 재산조회 신청을 하고, 법원은 다시 은행연합회 등 금융단체와 건교부 등에 채무자 본인명의의 부동산과 금융자산 내역 일체를 조회할 수 있게 했다.
법원은 이를 채권자에게 알려 줘 채무자의 자산을 압류 하거나 소송을 통해 돈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 2년간 거래 내역을 소급해 적용할 수 있게 돼 강제 집행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을 타인 명의로 넘기는 경우도 적발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조치로 지금까지는 채권자가 일일이 전국의 금융기관에 숨어있는 채무자의 돈을 찾아내기 어려웠으나 이제는 법원이 제2금융권의 금융자산까지 일괄조회를 하기 때문에 최소한 본인명의의 자금은닉은 불가능해 질 전망이다.
다만 금융자산의 경우 과도한 개인의 금융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현재의 금융자산만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그러나 재산조회제 시행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재경부에선 ‘금융기관의 특정점포에만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고 범위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금융실명제법을 들어 은행연합회 등을 통한 일괄조회 방침에 다소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완강해 보인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 제정 단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법리검토가 있었고 대법관 회의에서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점포별 조회를 할 경우 대형은행 등에 조회가 집중되는 탓에 자금이 외국계 은행과 새마을 금고 등으로 몰려 금융시장 혼란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