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홍익대 앞 피카소 거리 인디패션 메카로 뜬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홍익대 앞 피카소 거리 인디패션 메카로 뜬다

입력
2002.05.31 00:00
0 0

일명 ‘피카소거리’로 불리는 홍대앞 공영주차장 골목 패션가에는 ‘3무(無)’가 있다.첫째 똑 같은 디자인의 옷이 없다. 둘째 소위 명품브랜드나 유명 내셔널브랜드 전문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셋째, ‘9 to 5’로 대변되는 일반화된 숍 오픈시간이 없다.

그럼 ‘3다(多)’는? 세상에 하나뿐인 옷, 그런 옷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옷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홍대앞 피카소거리가 인디패션의 메카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인디밴드가 주류 음반시장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활동을 하는 밴드를 일컫는다면 인디패션은 백화점으로 대변되는 주류 패션유통 형태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패션숍을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과 철학을 옷에 담는 디자이너들과 그 옷을 통칭한다.

홍대 앞에 이들 인디패션 숍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들여온 구제품 위주의 사입매장(시장이나 외국에서 옷을 사다 파는 소매업태)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패션관이 뚜렷한 젊은 디자이너의 숍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있다.

‘미선 박’의 박미선, ‘G#’의 이경원 홍은주 임선옥 등 중견 디자이너는 물론 ‘신지’의 신정임, ‘클럽101’의 박혜린, ‘화화(花花)’의 윤진희, ‘카키’의 김민정, ‘헤너디자인’의 김철영 등 아직 무명이지만 만만치않은 디자인 실력을 갖춘 젊은 세대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에게 홍대 입구는 패션의 해방구, 옷에 대한 속박이나 고정된 틀이 없는 자유로운 실험장소로 매력을 더하고 있다.

■유행이 없어 자유롭다

1997년부터 홍대 앞에 터를 잡은 ‘아가시’ 의 니트디자이너 이경원씨는 홍대입구 패션의 매력을 ‘유행에 휩쓸리지않는 프리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청담동만해도 ‘프라다’스타일로 입어야 청담족이라는 식의 룰과 유행이 있는데 홍대 앞엔 그게 없어요. 유행보다는 개성적인 스타일의 옷들이 많이 팔리는 게 특색이지요.”

1999년 압구정동에서 홍대 앞으로 매장을 옮긴 ‘미선 박’의 박미선씨는 “디자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와서 옷을 즐기는 것이 홍대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압구정동은 수입브랜드의 선호도가 굉장해요. 수입 브랜드 광고사진 갖고 와서 그대로 만들어 달라는 사람도 많구요. 그러다보니 디자이너가 제 색깔을 내기가 힘들어요. 규격화를 강요당하는 느낌이랄까. 반면 홍대 입구는 ‘홍대니까’라는 인식들이 있어요. 문화예술이 인정받는 동네이기 때문에 옷에서도 디자이너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

‘홍대니까’라는 표현에는 홍대 앞이 산울림소극장과 씨어터제로, 쌈지아트스페이스, 그외 수많은 화랑과 테크노클럽, 록카페들이 공존하는 문화의 거리라는 공감대가 깔려있다.

이 문화공간이 제공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예술적인 분위기, 비주류와 비정형성이 전달하는 창조적 자극이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바로 다른 패션거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홍대 앞만의 매력이다.

■옷이 아니라 문화를 판다

국내 유일한 클럽웨어 전문점 ‘클럽웨어 101’에 들어서면 언뜻 테크노 바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몽환적인 테크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들은 조명 아래 형광색으로 빛을 발한다.

조명을 받으면 반짝이는 매니큐어는 물론 야광막대와 조명등 모양의 귀걸이 등 클럽활동에 필요한 각종 액세서리가 구색을 갖추고 진열돼 있다.

매장주인이자 디자이너인 박혜린씨는 “패션은 옷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말했다.

“홍대 앞은 문화가 있는 거리라는 점에서 신촌이나 압구정동과 차별됩니다. 특히 홍대 앞의 클럽문화는 이국문화에 대한 젊은이의 높은 관심과 수용도를 보여주지요. 외래문화이지만 이젠 우리 것화한 클럽문화를 좀 더 자연스럽게 제대로 즐겨보자는 뜻에서 전문점을 하게 됐어요.”

문화를 판다는 것은 홍대 앞 패션숍들의 공통된 주제다. ‘화화’는 파티를 주제로 파티와 관련된 옷, 액세서리, 파티용품 일체를 제작판매하며 ‘헤너디자인’은 인도식 액세서리와 여성의류를 내놓고있다. ‘미선박’과 ‘G#’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일상을 디자인테마로 잡는다.

■진정한 보보스가 입는다

홍대앞 패션의 또다른 특징은 고객층이 대학생보다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전문직 직장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개장한 ‘G#’의 숍마스터 김영애씨는 “대학가이지만 주 고객은 그림이나 음악, 광고분야에 종사하는 직장인”이라고 말한다.

대학생들이 선뜻 구매하기엔 가격대가 높기도 하지만 독특한 스타일들을 자랑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옷을 좀 입어본 사람들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옷이 아니라 옷을 입는 사람의 문화생활을 따라가기 때문에 홍대앞 패션숍들은 운영사이클에서도 타지역과 차별된다.

공연과 클럽문화 등으로 밤시간대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이곳 패션숍들의 평균 오픈시간은 오후 4시. 대부분의 가게들이 밤 11시까지는 기본이고, 자정을 넘겨서 영업을 하는 곳도 많다.

‘미선 박’의 박미선씨는 “옷의 묘미를 알고 삶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가꾸며 훌륭한 디자인 상품에 대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곳 고객들이야말로 진정한 보보스”라고 말한다.

홍대 앞이 패션가로 새롭게 주목 받으면서 몇몇 내셔널 브랜드들은 홍대 앞에 대형 매장을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쌈지가 올 가을 ‘쌤’매장의 런칭을 계획중이며 데코도 ‘There’s’ 매장오픈을 구상중이다. 또 올해 파리컬렉션에 진출한 중견디자이너 이상봉씨도 이곳에 매장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성패션계에 신선한 자극을 제공하는 인디패션의 메카로서 홍대앞 패션거리의 급부상은 이미 예정된 셈이다.

■홍대앞에 가볼만한 패션숍

▲미선 박 : 일본 에스모드도쿄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활동했던 디자이너 박미선씨의 ‘속이 화려한 사람’을 위한 옷집.

소박해보이지만 은근한 멋과 섹시함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옷들을 만들고 있다. 재킷 36만원부터, 치마와 바지는 16만~32만원대. 맞춤복도 제작한다. (02)338-1308

▲ G# : 중견 디자이너 이경원 홍은주 임선옥씨의 패션쇼 출품작들을 판매한다. 모델들의 몸매에 맞춰 제작된 옷이라 사이즈가 55, 66으로 한정돼 있지만 원하면 5만원 추가해서 맞춤도 해준다. 컬렉션 시즌에 찾아가면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티켓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02)338-4137

▲ 신지 : 뉴욕과 파리 홍콩 등의 멀티숍에 옷을 수출하고 있는 디자이너 신정임씨의 매장. 사랑스러운 프릴 블라우스와 치마 등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옷들이 많다. 재킷 25만원, 스커트와 바지 15만원대. (02)3142-5061

▲ 클럽웨어101 : ‘클러버들을 위한 모든 것’이 모토. 가격도 15만원짜리 티셔츠부터 2만원짜리 치마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언뜻 지나치게 현란해보이지만 막상 골라보면 일상복으로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으면서 재미를 주는 옷들이 꽤 많다. (02)3142~1587

▲ 헤너디자인 : 인도풍 액세서리와 의류, 향 등 소품을 만날 수 있다. (02)322-5015

▲ 花花(화화) : 섹시한 스타일의 파티복을 판매한다. 화려한 구슬장식과 파격적인 언밸런스 디자인 등 튀는 옷들이 많다. (02)323-2623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