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가 떨어져 걱정하는 친구에게 친구의 어린 아들이 했다는 이야기.“엄마, 무슨 걱정이야? 은행 돈 나오는 기계한테 가서 돈 빼오면 되잖아.”
연일 터져나오는 신용카드 빚에 얽힌 살인, 자살, 강도사건들을 보고 있자니 요즘 우리나라 일부 성인들의 금전관이 여덟살 짜리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은행 현금기계에 들어있는 돈은 전부 내 꺼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친정 어머니는 돈에 관한 한 지독하기로 소문난 개성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특별한 경제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한가지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은 것은 ‘돈은 꾸지도 말고 꿔주지도 말아라’였다.
‘꾸지도 말라’는 건 이해가 가도 ‘꿔주지도 말라’는 건 너무 깍쟁이같은 사고방식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10년 만에 찾아온 대학동창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 못해 200만원인가를 꿔주고 나서 떼이고 나니, 정말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 후론 가까운 사이일수록 얼마간의 돈을 그냥 도와줄지언정 금전거래는 안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신용카드 빚 문제가 더 고약스러운 건 빚쟁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엔 빚쟁이와 도망자, 빚쟁이에게 안방을 점령당한 얘기 등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요즘의 신용카드사들? 이들의 광고에 의하면 빚쟁이가 다 웬말인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권유하는 마음씨 따뜻한 이웃이요, ‘줄 때 받으라’는 인심좋은 친구에게!
이런 이미지때문인지 둘째는 ‘신용카드’라는 단어와 살인, 강도, 자살 같은 단어가 어떻게 하나로 묶여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 얼굴이다.
“그러니까 현금서비스라는 것이 신용카드사에서 돈을 꾸는거고 그걸 못 갚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얘기야”에서 “베니스의 상인알지? 거기 샤일록이라는 고리대금업자가 나오잖아? 신용카드사는 쉽게 말해 기업화된 고리대금업자인 셈이야”까지 나오자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세상.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카라의 용돈기입장’ 같은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어린이들도 경제신문을 읽는다.
하지만 돈 버는 방법 이전에 우선 남의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평생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자면 말이다.
땡볕아래 동네 주택가에서 한 컵에 25센트짜리 레모네이드를 파는 미국 아이들, 절대로 그냥은 사주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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