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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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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입력
2002.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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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동성동본금혼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에 위헌 신청, 1997년 헌법 불합치 결정. 단지 성이 같다는 이유로 법적 부부가 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한이 풀린다.상속법 그리고 이혼 재산 분할법 등도 많은 여성의 아픔을 달래 주었다.

가정폭력방지법은 구타당하는 여성에게는 구원의 법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 개선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이다.

그 곳에는 가족법상 문제가 보이면 반드시 끝을 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곽배희다.

폭력에 시달려 임신상태에서 이혼한 여성이 있다. 재혼하여 잘 살다가 아이가 학교에서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다.

고통이 심해도 방법이 없다. 친자식처럼 아이를 사랑해도 자신의 핏줄이 아니면 남편은 직장에서 가족수당이나 학자금 융자를 받을 수 없다. 아이를 본 적도 없는 전 남편에게서 호적을 옮겨올 방법이 없다.

호주제는 이혼한 여성에게 너무나 큰 절망감을 안겨준다.

“시원합니다. 곽 소장님 파이팅!”방송출연 후 시청자 의견란에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여성의 아픔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지적하고 통쾌한 대안 제시를 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성운동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성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목표는 가정 내 잘못된 제도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런 제도의 희생자가 대부분 여성이기에 여성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과거 여성들은 당하고 살면서도 이혼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이혼은 가정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였다.

KBS TV ‘아침마당’에서 부부상담을 하면서 이혼을 권유하는 모습으로 비춰진적이 많은 이유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이혼을 조장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까지 한다. 이미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프랑스보다 높은 이혼율. 실제 그의 관심은 이혼 예방에 있다.

“요즘 남성들이 불쌍하죠”최근 들어 자주 하는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전북 남원의 만석꾼이셨다. 어머니는 두 딸 중 장녀. 완벽하고 정확한 성격. 어머니는 남녀차별을 받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여성이기에 유산을 받지 못하는 사회제도적 한을 겪는다. 아버지는 일본 명지대 출신. 공직생활을 친척의 좌익활동 때문에 마감하신다.

양보를 당연하게 아시는 분. 퇴직 후엔 농사를 지으셨다. 아프면서도 늘 무언가를 하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임종을 중 2 소녀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맞았다. 가장 어머니를 닮은 딸은 이 후 더더욱 완벽성을 다져간다.

법대는 소외당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돕고 싶어 선택했다. 하지만 법관이 싫어 기자가 되려다가 선생님께 크게 혼난다.

4년 내내 A플러스라는 전설적인 학점을 받을 정도로 교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학생. 원래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다.

결국 기독교방송 PD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여성계의 대모인 고(故) 이태영 변호사의 제의로 가정법률상담소로 자리를 옮긴다.

30세가 넘어 김종철 전 연합통신 사장을 만났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기자로 동아투위의 주도자중 한명이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를 위한 명분 있는 일을 하는 지식인이라는 점에 호감이 가 결혼결정을 했다.

완벽주의자와 정력적인 사회 활동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와 사회생활의 병행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 줄 모르고 신혼 초부터 마음놓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그럼에도 그는 성격상 며느리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에 따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남편은 아내에게 무언가 강요한 적도 없다. 가부장적 여성 역할을 요구한 적도 없다. 사회 활동에서는 완전한 동지다. 30년 상담 생활은 자신에게도 해결점을 찾아 준다.

법률 상담의 판단은 누구보다 빠르다. 그래서 다른 상담원보다 몇 배 더 많은 일을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확한 답변은 내려 주었지만 위로는 주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이러한 태도는 가정 문제에 대한 상담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1990년 대학원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다. 2002년에는 이혼에 관련된 내용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정확하고 완벽하지만 섬세하고 여린 성격은 소장이 되면서 선이 굵고 결단력이 있게 변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보가 일정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섬세한 여성적 모습을 보였지만 적정량 이상을 취득하면서부터 자신만만하게 판단하는 선 굵은 지도자가 되었다. 여성적인 면에 남성적인 면이 첨가되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운동에 대한 시각은 일반 페미니스트와는 사뭇 다르다. 공격적이지 않다. 시댁 어른에게 잘하고 살림을 철저히 꾸려나가는 모습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아버지나 남편과의 정서적 유대도 좋다. 투쟁 목표는 사회 제도의 불평등이다. 남성이 아니다. 따라서 남성에게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

남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원해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호주제는 다르다. 아이의 억울함과 그리고 젊은 여인의 고통.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제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건 곽배희에게 신앙이다. 여성에 대한 너무 많은 불평등. 그에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약력

▲1946년 서울출생

▲1969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1970~1973년 기독교방송 PD

▲1973~1995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2000년~현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여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등 역임

▲1993년 세계인권의 날 대통령상, 1998년 여성단체연합 여성권익신장기여의 ‘디딤돌’ 수상

▲저서 ‘위기에 선 가족’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

■지인들이 보는 곽배희

“속에 차돌이 들어박혀 있는 것 같다.”

곽배희 소장의 석ㆍ박사 논문을 지도했던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동원 교수의 평이다. 그 요체는 소리없이, 그러나 강하게 소신을 밀고 나가는 능력이다.

‘불도저’스타일과는 달리 반발에 물러서는 듯 하다가도 능숙하게 유화적으로 대처하며 목적을 성취한다.

법대 출신으로 사회학을 전공한 것은 풍부한 상담자의 소양을 갖추기 위한 욕심에서다. 이 교수는 “법대 출신이라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사회학을 폭넓게 이해했다.

바쁜 데다, 젊은 사람들과 섞여 공부하기 힘들겠다 싶었지만, 배려가 불필요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기억한다.

올해 2월 곽 소장은 ‘한국사회의 이혼실태 및 연구’라는 박사논문을 냈다. 상담경험이 집약된 흔치 않은 논문이라 추가로 찍어내야 할 정도로 요청이 많다.

1977~1980년 가정법률상담소에서 곽 소장과 같이 상담을 진행했던 세은심리상담연구소 김명순 소장은 곽 소장의 남편이 동아투위 사건으로 수배당할 무렵, 집에 들이닥친 기관원들을 피해 곽 소장을 숨겨 주기도 했던 친밀한 사이. 그는 “냉철하고 영리하며 사태파악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다. 같이 상담하다가 ‘저 사람은 후처(後妻)’, 혹은 ‘저 사람은 이혼 안할 것’등 상담자가 숨기는 진실을 귀신같이 집어내 많이 놀랐다. 속이 꽉 차있고, 말이 많지 않아 함부로 대하기 더 어려운 사람이다”고 말했다.

‘완벽함’은 두 사람이 공통으로 꼽는 특징이다. “일, 인간관계, 시댁 남편 아이와의 관계… 모든 게 철저하다.

‘너무 그러면 스스로 괴롭지 않겠냐’며 충고하기도 했다.”(이동원 교수) “아이를 하도 완벽하게 키우려 해서 옆에서 말린 적도 있었다. 남의 충고는 그렇게 잘 듣는다.” (김명순 소장)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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