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라한 달동네, ‘똥 퍼’하며 고지대를 오르내리는 똥지게꾼, 가난 때문에 술집에 나가는 경아 아니 봉자. 청승을 떨기에 딱 맞는 요소를 모아두었다.여기서 공부는 팽개치고 싸움질이나 하며 몰려다니는 고교생 삼총사는 날개 꺾인 젊음이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뻔한 기대를 ‘해적, 디스코왕 되다’(감독 김동원)는 보기 좋게 배반한다. 초라해서 애환을 자아내야 할 80년대 달동네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코미디로 바꾸어놓는다.
일당백의 싸움꾼 해적(이정진)과 그의 친구 봉팔(임창정)과 성기(양동근).
수업은 ‘땡땡이’치고 패싸움 한판 벌인 후에 중국집에서 자장면 곱배기로 배를 채우고 빈 집 골라 깡소주를 나눠마시는 게 일과다.
파격이 일어난다. 해적의 마음을 뒤흔든 봉자(한채영)의 출현이다.
친구 봉팔의 동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미모이지만 똥지게꾼 아버지가 똥차에 치여 몸져눕는 바람에 그 빚을 갚기 위해 술집에 제발로 걸어 들어간다.
봉자 구출에 나선 해적 삼총사는 싸움 실력만 믿고 무작정 디스코텍으로 쳐들어가지만 드디어 프로를 만나 무릎을 꿇는다.
디스코텍 사장 큰형님(이대근)이 “춤으로 갚아야 하지 않겠어?”하며 조건을 내건다. ‘디스코 경연대회서 1등을 하면 봉자를 내준다.’
기본 골격은 감독 김동원이 대학(서울예대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그대로다.
볼거리를 대폭 보강했다. 액션과 디스코다. 카메라는 해적의 싸움실력을 과시하고 디스코경연대회는 각종 춤의 향연으로 꾸몄다.
80년대를 추억하는 감독은 빈티지 혹은 촌티라는 컨셉트를 잊지 않았다.
중동에 남편이 돈 벌러간 새 춤바람 나는 여인네 등 80년대에 대한 기억은 별반 새로울 게 없지만, 줄무늬가 선명한 트레이닝복, 딸딸이 자전거(모터 달린 자전거), 사이다병, 경아라는 술집 여인의 예명 같은 사소한 부분이 애교스럽게 복고적 향수를 자극한다.
“이름이 뭐지?” “봉… 경아에요.” “아 봉경아.” 시트콤적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웃음에 깊은 의미는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웃고 털어버리는 게 작품의 의도를 살려주는 편.
인물의 무게중심이 어긋나있다. 주인공 해적의 캐릭터는 약한 반면 봉팔은 배경부터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설득력이 있다.
임창정 양동근 등 연기파 스타들의 연기가 영화를 살려준다. 제 몫도 못해내면서 허풍만 치던 임창정, 어눌한 말투로 엉뚱한 행동을 일삼던 양동근은 배역에 녹아있다.
이대근, 김인문, 정은표 등의 과장연기도 촌티와 맞물려 들어간다. 6월6일 개봉. 15세 관람가.
문향란기자
iami@hk.co.kr
■김동원감독 "영화는 재밌어야…다음엔 더 웃길것"
“재미있게 추억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김동원(28) 감독이 기억하는 80년대 초반은 무겁지 않다.
하기사 영화배경인 84년에 그의 나이 열 살. 포항의 초등학생이었던 그가 이 시기를 ‘오월 광주’나 매일 벌어지는 시위 같은 것으로 기억하긴 힘들 것이다.
80년대를 선택한 이유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과거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당시를 배경으로 삼았고 스스로도 “낭만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가 그려낸 디스코, 달동네 푸세식 변소, 병우유, 딸딸이자전거, 전봇대에 붙어있는 벽보 등은 80년대라기보다는 잊혀져가는 과거의 인상이다.
시대 고증은 신경을 안 썼기에 21세기 가수인 볼빨간의 곡까지 집어넣었다.
“영화 감독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으나 “잘할 자신도 있고, 다른 좋은 감독들과 혈전을 벌이고도 싶다”고 한다.
4년전 대학졸업작품으로 만든 16㎜ 흑백 단편을 본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가 “이대로 썩히긴 아깝다”며 직접 제작에 나서겠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강 교수와 친한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가 작품을 탐내 제작사로 나섰다.
원래 81년도를 배경으로 교복입은 삼총사가 등장했으나 지난해 ‘친구’를 통해 교복 차림이 뜨는 바람에 84년 교복자율화시대로 바꾸었다.
상업영화가 되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며 후회는 없는 듯 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앞으로도 음악과 춤, 액션에 치중할 것 같다고. “다음 작품에서는 더 웃기고 싶다.” 심각한 구석을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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