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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전화수다도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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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전화수다도 직업병?

입력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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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롭게 생긴 버릇 하나. 전화 다이얼을 누를 때,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꼭 시계를 본다. 얼마나 오랫동안 통화를 했는지 시간을 재는 것이다.갈수록 통화시간이 길어지니까 신기록이 나왔나 확인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물론 비밀이다.

‘용건만 간단히’라는 에티켓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나날이 길어지는 건, 기자로서 갖게 된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기자가 된 후 누군가를 만나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내기에 앞서 일단 전화번호부터 확보하려 하고 어디를 가든지 전화 위치부터 확인한다. 만일에 대한 대비책이다.

“연예인은 원없이 보겠다.”

방송을 담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의 첫 마디는 한결 같았다. 물론 만난다. 하지만 기자가 되고 난 후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 발로 뛸 수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차선책은 선택의 여지 없이 전화였다. 미니시리즈라도 시작하면 일주일 내내 드라마 촬영으로 스케줄을 채우는 스타에게 없는 시간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고, 당장 만나고 싶다고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급한 대로 짜내는 시간이 대개 이동 중일 때이다 보니 취재원의 목소리라도 직접 들을 수 있는 휴대폰의 존재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사치레는 생략해도 되니까 시간도 절약하는 전화 취재가 효율적이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했다.

자꾸 하다 보니 이력이 붙는지, 아니면 취재원이 그런 통화에 익숙한 건지 침묵하는 시간도 짧아지고 때로는 수다까지 늘어놓는 여유까지 부린다.

낯을 많이 가리기로 알려져 있던 한 여자연예인의 ‘헤헤’하는 웃음소리까지 그대로 전화를 통해 전해져 온다.

“몇 번 통화는 했는데, 처음 뵙네요”라고 명함을 내미는 것도 처음에는 민망하더니 이젠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일에서 시작된 전화 수다가 요즘은 사생활까지 야금야금 파고들어오고 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백수일 때조차도 하지 않던 일을 즐기게 됐다. 소녀 때는 오히려 ‘종일 보고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다고 또 전화냐’며 밤늦게 전화를 붙들고 있는 또래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듯 전화로 떠는 수다에 재미를 붙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전화로 수다를 떨자고 강요한다.

직업병 아닌 직업병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전화는 친구들 만날 시간을 낼 수 없는 나를 친구와 연결시켜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전화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휴대폰 벨소리를 진동으로 전환하고 잠시 무시해본다.

전화벨소리에는 반사 작용처럼 손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전화로 수다를 떨 새로운 상대를 찾아나서고 있는 것인지, 곧바로 벨소리로 바꿔놓고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든다.

버틸만큼 버텨보지만 벨소리가 신경을 긁어대서 참을 수가 없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이제는 전화받기를 즐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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