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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알랭 드 보통의 '삶과 철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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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알랭 드 보통의 '삶과 철학 산책'

입력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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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독자들에게 철학책이 매력적인 경우는 드물다. 수학책이나 물리학책만큼은 아닐지라도, 철학책 역시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한 배타적 읽을거리로 보이는 일이 잦다.입문서라고 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역사적 순서에 따라 서술을 하든 주제나 사조별로 서술을 하든, 철학 입문서는 쉽게 씹어지지 않는 개념어들과 미로 같은 계보들로 가득 차 있다.

철학 입문서들에 손이 얼른 가 지지 않는 것은 또 그 개념어들과 계보들이 내 삶과는 다른 공간에 있다는 판단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이 쓴 ‘삶의 철학 산책’(정진욱 옮김ㆍ생각의나무 발행)은 그 점에서 매우 다르다.

기자는 이 책을 들자마자 단숨에 읽어치웠다. 마감을 눈 앞에 둔 다른 글을 써야 하는 처지였는데도 그랬다.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워, 니체 여섯 철학자에 대한 맛보기 입문서인 이 책은 일종의 심리 치료 서적이다.

각 장의 주인공인 이 철학자들은 심리치료사로 등장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삶에서 좌절을 맛본 독자라면 이 책을 중간에 덮기는 어렵다.

원제가 ‘철학의 위안’인 ‘삶의 철학 산책’은 그 제목이 ‘위안’이라는 말로 끝나는 여섯 개의 챕터를 여섯 철학자들에게 할애했다.

예컨대 첫 챕터인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에서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동시대 사람들의 편견에 어떻게 맞섰는지를 기술하면서, 다수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생각은 아니라는 것,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챕터인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에서는 에피쿠로스의 소박한 삶과 그의 쾌락주의를 소개하면서, 우정과 자유와 사색 세 개의 재화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의 주인공 몽테뉴는 섹스나 배설이나 지적 무신경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 사이사이에 자신이 직접 겪은 사적 에피소드들을 고명처럼 흩뿌린다.

독자들은 이 책에 담긴 메뉴 가운데 자신의 처지에 따라 아무 거나 골라 먹을 수 있다. 저자가 차려놓은 음식 모두를 동시에 삼키면 도리어 탈이 날 수도 있다.

예컨대 비관주의를 통해서 좌절을 극복하는 세네카의 방식과 다소 기괴한 낙관주의를 통해서 좌절을 넘어서는 니체의 방식은 하나의 인격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기 어렵다.

실상 ‘곤경에 대한 위안’이라는 마지막 챕터에 등장하는 니체는 위안이라는 것 자체를 무용할뿐만 아니라 해롭다고 선언함으로써, 저자가 그 때까지 소개해온 심리 치료법들을 모두 사이비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 책은 결국 유익한 책이 못 되는 것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다. 저자는 유익함을 가장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냈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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