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이 6월 14~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발레단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65)가 새롭게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한다.비노그라도프는 23년간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세계적 안무가로, 1992년 ‘백조의 호수’로 유니버설과 인연을 맺은 뒤 98년 이 발레단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이 같은 거장의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 그만큼 국내 무용수들의 기량이 높아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40년 키로프 발레단이 라브롭스키 안무로 초연한 이래 수많은 발레 거장들이 재해석을 시도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존 프랑코, 유리 그리가로비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등 여러 버전이 무대에 올랐다.
비노그라도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화려하고 힘이 넘치는 정통 러시아 발레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드되(2인무)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들어올린 채 한 발로 서는 식의 고난도 동작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져 마치 아크로바트 공연을 보는 듯하다.
춤 동작이 워낙 격렬해 24일 무대 리허설 도중 로미오 역의 중국 무용수 왕이가 목을 다쳐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다행히 가벼운 부상이어서 왕이는 며칠 휴식을 취한 뒤 연습에 복귀했다.
티볼트의 죽음을 접한 줄리엣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춤을 추는 등 고전 발레에서는 보기 힘든 자유분방한 연출도 눈길을 끈다.
화려하고 웅장한 의상, 무대장치에서도 감독의 욕심이 묻어난다. 감독이 3년 전부터 준비해온 기본 스케치를 바탕으로, 갈리나 솔로비예바와 시몬 파스투크가 각각 디자인했다.
결말도 색다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이후 두 가문이 극적으로 화해한 뒤 남녀무용수 12쌍이 로미오와 줄리엣 동상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객석 사이를 천천히 걸어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비노그라도프 감독은 “주인공의 숭고한 사랑을 화해와 평화로 승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뒀다”면서 “한국의 분단상황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엄재용-김세연, 왕이-황혜민, 황재원-박선희가 번갈아 나온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ㆍ일요일 오후 3시, 7시30분.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줄리엣역 박선희 '마지막 불꽃'
줄리엣 역을 맡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박선희(36)씨에게 이번 공연은 아주 특별하다. 18년간의 발레리나 삶을 마감하는 은퇴 무대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선화예고 3학년 때인 1984년 유니버설 창단공연에 객원으로 참여한 뒤 이듬해 졸업 후 발레단에 입단했다.
국내 발레계에서 고교만 나와 직업무용수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고 요즘도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그는 외국유학 경험도 전혀 없이 국내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발레리나가 됐다. 해외 공연에서도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아 ‘토종 발레’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신토불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연습실에서 만난 박씨는 은퇴 소감을 묻자 “40대까지 무대를 지키는 외국 무용수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것은 가족을 생각해서다. “해외 순회공연을 가면 한, 두 달씩 집을 비운다. 그동안 한마디 불평 없이 지켜봐준 남편과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위해 아쉽지만 내 욕심을 접기로 했다.”
박씨는 작품의 인물 분석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백조의 호수’에서 보여준 관능적이면서도 차가운 흑조 오딜 연기는 국내 최고로 꼽힌다.
한 번 배역을 맡으면 밥 먹고 샤워할 때도 그 생각만 한다는 그는 요즘 줄리엣에 푹 빠져 산다.
연습에 몰두한 그의 표정과 눈빛, 손짓 하나하나는 이미 14세의 앳된 소녀가 돼 있었다.
은퇴 후 발레단 코치로 활동할 계획인 그는 “비록 무대를 떠나지만 발레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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