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대립의 지난 시대, 시 한 편 때문에 이국살이를 해야 했던 박기동(朴璣東ㆍ85)씨가 고국땅을 밟았다.“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 박씨는 1997년 가수 안치환이 불러 널리 알려진 ‘부용산’의 노랫말을 쓴 시인.
구전되던 이 노래는 이전까지 작곡자 안성현씨가 월북인사인데다 ‘빨치산의 애창곡’이라는 딱지 때문에 금지곡 아닌 금지곡이었다.
1947년 교사였던 그는 폐결핵으로 떠난 누이를 고향(전남 벌교)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는 길에 짤막한 시 한편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부용산’이었다. 이듬해 동료교사 안성현(동요 ‘엄마야 누나야’ 작곡자)씨가 여기에 곡을 붙였다.
“안 선생은 후에 무용가 최승희의 권유로 북으로 갔고, 이때부터 ‘부용산’은 수난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애창했다는 말이 돌면서 탄압이 더욱 심해졌지요." 국가기관 감시대상으로 분류된 그는 교사직을 내놓고 40여년을 생활고에 시달리다 1993년 호주로 이민, 조그만 단칸방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70여년간 시를 써 오면서 여태 시집 한 권 내지 못했다는 것은 발등을 찧고 싶을 만큼 원통한 일입니다.”
시집 ‘부용산’이 아닌 수필집 ‘부용산’(삶과꿈刊)을 들고 방한한 그는 “내년에는 반듯한 시집을 선보이며 시인으로서의 흔적을 남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방한 기간 부용산과 목포여고 교정에 세워진 '부용산' 시비를 둘러보고 내달 3일 제자들이 마련하는 출판기념회 겸 환영회에 참석한 후 8일 호주로 출국한다.
박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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