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상담과 봉사활동으로 활발한 현역을 보낸 이근후(67)씨의 정년 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연구소 ‘가족아카데미아’를 차리고 청소년을 위해 사이버상담실을 운영하며 지인들과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과 원만하게 쌓아온 대인관계가 그의 정년 이후를 이끌어가고 있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을 때 한 선배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 참석을 했다. 나의 정년을 연습하기 위해서 였다.
그 선배는 정년을 아주 아쉬워하는 내용의 고별사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제자들도 무슨 말로 교수님을 대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축하를 해야 하는 일인지, 아쉬워해야 할 일인지 어정쩡한 자세로 그 교수님을 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다가가 ‘축하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첫째, 정년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선 건강이 뒷받침해 주어야 하고 건강뿐만 아니라 연구나 교육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서 정년을 맞는다는 것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으로 연령을 정해 퇴직을 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헌법 소원이라도 내서” 약간은 흥분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도 축하할 일이라고 우겼던 기억이 난다.
회갑을 맞으면서부터 나는 정년을 ‘이렇게 맞았으면 좋겠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일이다. 마음은 아무리 청춘이라지만 늙는다는 자연현상 앞엔 장사도 힘을 쓰지 못하리란 전제를 먼저 가졌다.
힘은 점점 쇠퇴해 가는데 마음만 젊다면 이런 갈등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선 하던 일들을 정리해서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 나갔다. 다른 하나는 정년이후에 새로 마음을 쏟을 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실현하는데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일을 줄여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년 후의 일과 꼭 연관되지 않은 일을 우선적으로 줄여 나갔다. 정년 후에 마음을 쏟을 일을 정하는데도 시간과 의논이 필요했다.
혼자서 소꿉장난 하듯 일을 꾸며볼까 라고도 생각했으나 살아가는 일이 ‘어찌 소꿉장난에 비길 것인가’라는 생각에 좀 더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하던 일들의 연속선상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얻은 결론이 연구소를 하나 차리는 일이었다.
흔히 연구소 하면 퇴임 후에 이름만 걸치고 소일 삼는 경우들도 보는데 나는 연구소가 참여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굴러가기를 희망했다.
나에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동기는 1980년대 초반 유럽을 여행할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내가 정신과를 전공하는 속성상 유럽을 여행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들이 남긴 자취를 더듬던 중 프로이트와 구스타프 융의 흔적을 찾은 일이 있었다.
비엔나의 프로이트 박물관이 박제된 표본처럼 느껴졌었다면 스위스에 있는 융의 연구소는 아직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연구소로 느껴졌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론은 연구소의 구성이나 설립 목표 등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은퇴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먼 훗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살아있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세운 것이 ‘가족아카데미아’란 연구소인데 회갑을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은 간판만 내걸었을 뿐 내세울 만한 활동이 없었다. 점차 비영리 임의기관으로 일을 해 오다가 지난 2월 드디어 사단법인으로 체제를 정비하고 명실상부한 연구소를 꾸몄다.
법인체가 되면 어느 한 두 사람의 입김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 연구소의 모토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며 전문가들의 집단으로 다섯 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연구팀이다. 가족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가지고 현역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간다. 두 번째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상담과 성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이버 상담팀이다.
세 번째로는 사회교육팀인데 이 팀은 주로 상담원의 교육과 부모교육 그리고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노년의 준비전략을 구현하는 팀이다.
네 번째로는 사회봉사팀인데 이는 평소에 해오던 네팔봉사와 보육원의 문화프로그램을 계속하는 일이다. 봉사는 연구와 함께 내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86년에 같은 대학 교수들과 시작한 네팔 의료봉사와 매주 한 차례씩 광명시의 한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보육원봉사이다.
다섯 번째는 멀티미디어 팀인데 이는 ‘가족아카데미아’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일을 한다.
나는 팀 중심의 연구소가 활발하면서도 시의에 걸맞게 역동적인 활동을 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연구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런 작업을 통해 후학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여력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면 이런 역할에서도 물러나 후학들의 활발한 활동을 다만 지켜 보면서 즐거워 하고 감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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