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대선 발판으로… 정권 위기탈출 기회로…파라과이의 괴짜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37)는 월드컵에서의 인기를 무기로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은퇴후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해 온 칠라베르트는 19일 최종 훈련캠프지인 일본에 도착해서도 형무소와 자선기관 등을 찾아나서고 있다. 마치 자국에서 선거유세를 하듯 정치적 행보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다.
2002한일월드컵 남미예선에서 4득점하는 등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한 세계적 스타 칠라베르트의 정치적 야망은 당연히 이번 월드컵 결과와 직결된다. 국민들도 쿠데타 잔재 청산을 요구하는 등 개혁적인 성향의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어 그가 정말 후보로 나설 경우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없더라는 축구는 권력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1974년부터 24년간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했던 브라질의 후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FIFA에 경영이념 등을 도입하면서 돈과 권력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그의 ‘대권’을 이은 제프 블라터 현 회장이 공금유용 등을 앞세워 퇴진을 요구하는 반대파의 주장을 묵살한 채 재선을 꿈꾸는 것도 FIFA회장이 누리는 막강한 영향력과 칙사대접을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60~70년대 브라질 삼바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축구 황제 펠레 역시 은퇴 후 체육부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대통령선거 때마다 단골 후보로 거론된다. 1997년 체육부장관 당시 입안한 ‘프로구단은 선수보유 기간을 10년에서 5년에서 줄인다’는 내용의 이른바 펠레법은 수혜자가 1만2,000명에 달하는 등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월드컵 스타플레이어는 또 권력구도를 뒤흔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이 게임메이커 후안 베론 등 월드스타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거는 건 이 때문이다.
반대로 정치인은 축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브라질의 페르난도 엥히케 카르도주 대통령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90년대 월드스타 호마리우가 탈락, 국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자 “제발 뛰게 해달라”며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에게 애원했다.
아일랜드 버티 어헌 총리 역시 팀과의 불화로 대표팀을 이탈한 스타 선수 로이 킨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섰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처럼 월드컵은 성적이 좋으면 국민 축제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반 정부 세력이 기세를 떨칠 수 있는 등 양날의 칼을 지니고 있다.
박석원기자
■비방·폭로로 얼룩진 FIFA회장 선거
29일 서울 힐튼호텔에서는 향후 4년간 세계축구계를 이끌 선거가 실시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차기회장 선거다. 후보로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표가 나섰다.
1998년 전임 후앙 아벨란제(브라질) 회장의 뒤를 이어 FIFA 회장직을 맡은 제프 블라터(스위스)와 사상 첫 유색인 FIFA 회장을 노리는 개혁파 이사 하야투(카메룬)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이다.
회원국이 동일하게 1표씩 행사해 선출하는 FIFA 회장은 한 나라의 국가원수 못지 않은 명예와 권한을 가진 축구대통령이다. 유엔가입국(189개국)보다 많은 204개 회원국과 6개 대륙의 축구연맹을 거느리며 외국 방문시 국가원수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다.
회장은 또 수억달러가 걸려 있는 공식파트너와 TV 중계권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거대기업인 FIFA의 재정을 관리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까지 겸임한다.
이 같은 막강한 권한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양측의 비방 폭로전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선거 못지 않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수논란과 재정집행 과정의 부정부패 등의 논란이 계속돼 스포츠를 정치로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호기자
■프랑스 시라크 압승 축구대표팀도 한몫
이달 5일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후보를 누르고 재선되자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극우주의자인 르펜이 혈통에 문제를 제기하며 알제리 등 외국 출신배경을 지닌 대표팀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자 선수들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며 들고 일어섰고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르펜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축구와 월드컵이 현실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치권이 월드컵을 6ㆍ13 지방선거는 물론 연말 대통령 선거전략과 맞물려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직후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에 실패한 데도 축구라는 변수가 깔려 있다. 당시 8강에서 탈락했던 독일축구팀의 노쇠와 콜의 16년 장기집권 몰락이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았다.
월드컵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1934년 제2회 이탈리아월드컵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탈리아 총통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이탈리아를 하나로 묶기 위해 우승을 노렸고 1회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 선수들을 대거 귀화시켜 목표를 달성했다.
70년대 정치ㆍ경제적 위기에 빠진 중ㆍ남미 국가들도 축구를 적극 이용했고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70년 월드컵 때문에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들도 월드컵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은 대선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월드컵이 끝난 뒤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집권초 90% 대에 육박했던 지지율이 30% 선까지 떨어진 일본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이번 월드컵에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있다. ‘16강 진출만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인기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을 경제난 극복의 에너지로 삼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80%는 경제난 극복을 위한 반전 계기로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꼽고 있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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