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100년사에서 그처럼 통쾌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상대가 세계 최강 프랑스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2_3이라는 극적인 스코어 때문도 아니었다. 이제 우리 축구가 세계 어느 팀과 맞붙어도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바로 깨달음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1년 전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한국에 0_5의 참패를 안겨준 팀이 아닌가. 40여년 축구인생에서 우리 축구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26일 프랑스전은 한국축구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됐다. 세계축구계가 놀란 것이다. 27일자 조간은 “한국이 프랑스는 물론 세계축구계를 긴장시켰다”고 전한다.
프랑스는 전력상 1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점을 외신은 잘 알고 있기에 이러한 찬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본선 진출국마다 컨디션과 팀 조직력을 서서히 끌어올릴 시기가 아닌가.
프랑스와의 평가전은 한국축구사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유는 많다.
우선 우리 선수들은 선진축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해 나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는 늘 “16강, 8강도 가능하다”고 미리 흥분했었다.
필자가 감독을 맡았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도 그랬다. 하지만 막상 본 무대에 들어서면 주눅부터 들었다.
특히 먼저 실점할 경우 기복은 더욱 심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 스페인(2_2) 독일(2_3)과 싸울 때도 그랬다. 전반 2골, 3골을 먹고 나서 후반에 정신을 차렸지만 역시 수습이 너무 늦었다.
지금 우리 대표팀은 개인능력은 물론이고 조직력 등 모든 면에서 선진축구의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한 골을 먹은 뒤에도 팀 플레이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연습하던 대로 경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라운드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선수들의 개인능력도 크게 발전했다.
빠르게 패스하는 법,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법, 조직적으로 협동수비하는 법을 이제는 알게 됐다. 히딩크 감독도 선수들의 특징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수 많은 시행착오가 이제는 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대표팀에게서 50%의 가능성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16강 진출을 확신한다. 실력으로 볼 때 이 정도면 16강 수준에 근접했다.
16강 진출에 실패해도 좋다. 그런 불행이 발생한다 해도 실력 때문에 탈락했다고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팀의 불운을 안타까워 할 것이다.
히딩크 감독과 우리 선수들은 세계 수준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흥분이 아니냐고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표팀은 분명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기적은 바로 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온다. 그리고 자신감도 실력이라는 사실을 대표팀은 물론 국민도 깨닫기 시작했다.
본보 월드컵필진ㆍ전국가대표팀 감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