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애니메이션 제작사 ㈜마고21의 이정호(37) 대표이사는 그 동안 너무 괴로웠다.
‘철인 사천왕’ ‘블루 시걸’ ‘붉은 매’ ‘아마게돈’ 등 선배 제작자들이 공들여 만든 국산 애니메이션이 번번이 실패하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1997년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직접 기획한 TV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는 아예 개봉도 못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기존 배급방식에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 대작 사이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결론은 전용관 임대였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서울 역삼동 동영아트홀(구 계몽아트홀ㆍ500석)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250석)에서 개봉하는 ‘오세암’(감독 성백엽)은 바로 이 전용관 임대 방식을 이용한 국내 첫 애니메이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고양이를 부탁해’가 극장을 임대해 장기 상영한 적은 있지만 애니메이션은 처음이다.
그의 계산은 이렇다. 전용관에서 10만 명이 관람했을 때 매출액은 6억원. 여기에서 임대료 5,000만원과 마케팅비 5,000만원을 빼면 수입액은 5억원이다.
이에 비해 전국 20개 개봉관에 50만 명이 들어와 30억원을 벌어도 극장(15억원)과 배급사(10억원) 몫을 빼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입액은 역시 5억원이다.
“배급사 횡포를 무릅쓰고 어렵게 개봉관을 잡느니 전용관에서 확실하게 관객을 공략하자는 것이지요. 극장주 마음에 따라 개봉 1, 2주 반응을 보고 여지없이 간판을 내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개봉시기를 11월로 잡은 것도 ‘비수기 공략’이라는 마케팅 차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세암’은 동화작가 고 정채봉(1946~2001)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극화해 2년 전 기획단계부터 화제가 된 작품.
한번만이라도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겨보는 것이 소원인 고아소년 길손이와 그의 앞 못 보는 누이 감이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은 여기에 두 남매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삽살개 바람이를 등장시킬 예정. 제작비 12억원을 투입해 현재 70% 정도 완성됐다.
이 대표는 “배급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작품 완성도와 흥행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며 “더욱이 독일과 프랑스에는 이미 원작이 출간된 상태라 유럽시장 공략도 한층 쉬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보편적 소재, 눈초리가 약간 올라간 독특한 캐릭터, 파스텔 톤의 배경화면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도 흥행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만화전문 채널 투니버스에서 제작팀장을 지낸 이 대표는 1998년 TV 애니메이션 ‘하얀 마음 백구’로 ‘한 방’ 날린 인물.
‘하얀 마음 백구’는 99년 동아_LG 국제만화페스티벌 특별상, 99년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장려상, 2000년 대한민국영상만화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근래 보기 드문 화제작이다.
그는 “‘하얀 마음 백구’에서 진돗개가 화제가 됐듯이 ‘오세암’에서는 삽살개가 큰 인기를 누렸으면 좋겠다”며 “‘오세암’을 통해 창작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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