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식을 듣고는 함박꽃을 꺾어 들고 남편에게 갔습니다. 집에서 10분 남짓되는 거리에 남편이 있는데 그 길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허공에 뱉은 이야기들이 수상작이 됐어요. 남편이 제일 기뻐하겠지요.”남편을 암으로 여읜지 16년이 지났건만 진경자(59ㆍ독일 프랑크푸르트 로머호프가 26)씨는 아직도 묘소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타국살이의 애환을 함께 나눈 남편은 지금도 진씨의 가슴 속에 가장 듬직한 울타리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3년을 계획했던 독일생활이 평생을 간 것은 진씨의 간호사 자격증 덕이었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 이민을 결심한 70년대,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정부가 한창 추진하던 독일로의 간호사 파견사업 뿐이었다.
가난 때문에 어릴적 꿈이던 국문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수업료가 없는 대전간호학교를 다녀 얻은 자격증이었다.
그러나 말도 잘 통하지않는 나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노골적인 멸시를 참으며 이를 악물고 살아낸 것은 남편과 35세에 본 늦둥이 아들이라는 가족의 힘.
“모든 것을 잃으니까 오히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는 진씨는 이젠 남편이 묻힌 독일땅이 고향같다고 한다.
진씨는 현재 프랑크푸르트대학병원 산부인과병동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항상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있던 문학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필활동도 열심이다.
“인생은 계획한 데로만 흐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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