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구상에는 국제적 환경에 따라 수많은 전쟁과 대립, 갈등이 있었다.2차대전 후 동서 진영간에 이념 대립이 격화해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선 끔찍한 전쟁도 일어났다.
양 진영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민족 내부의 문제로 보지 않고 동서간 대립으로 보았기 때문에 전쟁은 외국군의 참전으로 확대되었고, 베트남전엔 우리나라도 개입했다.
베트남에서 영사로 근무하던 1975년 4월께다. 2년전 파리 휴전협정(73년 1월)에 따라 외국군이 모두 철수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1975년 4월 30일 북부 공산 베트남 세력이 사이공을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당시 사이공에 있던 주월 한국대사관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4월29일에 철수하기로 하고 28일 오전 김영관 대사와 이대용 공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기 하강식을 거행했다.
교민 1,000여명중 대부분은 항공편과 한국해군 LST편으로 철수했으나 교민 철수에 매달렸던 우리 외교관 일부와 교민 160여명은 미처 철수하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탈출하지 못한 나는 이리저리 몸을 피해 다녔지만 끝내 이 공사, 서병호 영사와 함께 공산 베트남군에 체포돼 사이공의 지화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거의 5년을 거기서 보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1980년 4월 11일 석방되어 이튿날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지만 아직도 마지막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89년 베트남 경제 연구를 시작하면서 90년 3월 베트남 상공회의소의 초청으로 다시 사이공을 찾았다.
옛 한국대사관 자리엔 내가 국기를 내렸던 국기 게양대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텅 빈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1992년 12월 우리나라가 다시 베트남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17년 만에 그곳에 태극기가 다시 게양되었다니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 곳에 국기가 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올해는 베트남 수교 10주년 되는 해다.
마지막 국기 하강식을 거행했던 나는 그 곳에 다시 국기가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안희완ㆍ베트남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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