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차남 홍업(金弘業)씨 소환을 월드컵 대회 이후로 미룬 데 대해 한나라당은 26일 전날의 정쟁 중단 선언을 수정, “청와대와 민주당이 검찰을 동원, 뒤통수를 쳤다”고 비난하고 나섰다.고심 끝에 택한 정쟁 중단 선언의 번복은 아니지만 언제든 견제에 나설 수 있다는 원칙적 태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이날 “권력 비리 규명 요구는 정쟁이 아님을 분명히 했는데도 검찰이 정쟁 중단 선언을 악용했다”며 “수사가 지연될 경우 정쟁 중단 선언을 파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아무리 월드컵이 중요한 행사라도 나라를 뒤흔든 범죄에까지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한 특보도 “정치권이 정쟁을 하지 않는다고 검찰이 덩달아 수사를 하지 않겠다니 검찰이 정치를 하겠다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이런 반응은 홍걸(弘傑)씨 수사가 일단락된 상황에서 홍업씨 조사가 한달 이상 연기될 경우 6ㆍ13 지방선거의 최대 공격 수단인 대통령 친인척 비리 의혹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의혹 규명 열기가 식어 버리면 지방선거 후 대선 국면에서 공세의 불씨를 되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정쟁 중단 선언을 뒤엎는 강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 격앙된 표면 분위기와 달리 공세 수위를 검찰 비판에 한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남 대변인은 “검찰의 이번 결정은 이명재(李明載) 총장의 강력한 수사 의지에 역행한 특정 지역 출신 정치 검사들의 발호 때문”이라고 검찰 내부의 차별성을 겨냥하기도 했다.
앞으로 한나라당의 선택은 여론과 지방선거 격전지인 수도권 판세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의 상황이 악화하면 권력 비리 파상 공세를 재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월드컵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것도 정쟁 중단까지 선언해 놓은 마당이어서 이 또한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비리 규명은 정쟁이 아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당직자들조차 의문을 표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 “정쟁중단 선언이 집권세력에 의해 말꼬리를 잡히는 바람에 우리 당의 발이 묶였다” “서 대표가 다소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한나라당의 반응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정쟁중단 발표를 틈타 소환연기 방침을 결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김종빈(金鍾彬) 중수부장은 “절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내부적으로 일단 월드컵 전에 홍업씨를 탈세 혐의로라도 불렀다가 재소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그 경우 오히려 봐주기 수사라는 오해를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만(朴滿) 수사기획관은 “월드컵 대회 중에도 참고인 조사와 계좌 추적 등은 계속한다”면서 “다만 수사에 시간이 필요하던 차에 국가적 대사가 겹쳐 소환을 연기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와의 갈등설까지 나오는 마당에 홍업씨 수사에 무슨 복선이 있겠는가”라며 “한나라당이야말로 정쟁 중단과 수사를 결부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