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별세한 임성남(林聖男) 국립발레단 이사장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발레의 역사였다.국내에 발레를 처음 들여온 이는 광복 직후 활동한 한동인(韓東人)이지만 한국전쟁 때 월북하면서 맥이 끊겼다.
그 후 한동안 공백 상태였던 발레의 역사를 새로 쓴 이가 바로 임성남이다.
그는 전주사범학교에 다니던 15세 때 프랑스 영화 ‘백조의 죽음’을 보고 발레에 매료돼 방학이 되면 부모 몰래 상경, 한동인이 이끄는 ‘서울발레단’에서 발레를 익혔다. 졸업 후 3개월간의 교사 생활을 거쳐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1950년 6월24일 ‘인어공주’의 바다요정 역으로 데뷔했지만 이튿날 한국전쟁이 터져 무대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는 발레리노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부산 피란시절 선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시마다(島田)발레연구소에서 발레를 배웠다.
‘도쿄청년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53년 귀국, 국내 남성 발레무용수 1호로 ‘임성남 발레단’(56년), 한국발레단(59년) 등을 이끌며 본격적인 발레 보급에 나섰다.
척박하기만 했던 국내 발레계는 62년 한국무용과 발레를 아우르는 국립무용단이 창단되면서 새 전기를 맞았다.
초대 단장을 맡았던 그는 74년 국립발레단이 독립한 뒤 92년까지 무려 31년 동안을 단장으로 재임하면서 400여편의 작품을 연출, 안무하면서 한국 발레계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74년 국내 최초의 고전발레 전막 공연으로 ‘지젤’을 선보인 것을 비롯,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숱한 명작들을 국내 초연했고, ‘지귀의 꿈’ ‘처용’ ‘왕자 호동’ 등 6편의 창작발레를 발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한국의 정서를 담은 ‘우리 발레’를 제대로 내놓지 못한 점을 늘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해 회고록에서 “세계 무대에서 우리 정서가 깃든 발레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후배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김긍수(金兢洙) 국립발레단 단장은 “고인은 한국 발레의 오늘을 있게 한 거목”이라면서 “고인의 업적을 기본 줄기로 우리 발레 역사를 정리한 자료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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