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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남북연합' 컨센서스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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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남북연합' 컨센서스 세우자

입력
2002.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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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의 통일협상 조항에 관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입장은 '폐기'가 아니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진의였다.그런데 그 후 후보토론이 있을 때마다 질문자들은 그가 폐기라고 말했다는 것을 전제로 묻는다. 최근 논란의 발단이 된 지난 22일의 관훈클럽 토론을 있는 그대로 따져 보아야 한다.

토론자가 "폐기라는 뜻이냐"고 질문한 것을 이 후보가 되받으면서 답변에 포함됐다. 그러나 1시간여가 지난 후 다른 토론자가 물었을 때 그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는 취지"라며 폐기라는 표현을 수정했다.

그러자 첫 토론자가 다시 나섰다.

-1시간여 전에 말한 내용을 번복하는 것인가. 북한의 평양방송은 남한이 이미 연방제 통일에 합의한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방송이 그랬다고 해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그가 '내 뜻은 그런 게 아니다'고 말하면 문제가 안 된다."

이 후보의 답변은 북한 관영방송들이 항상 실체를 자신에 유리한 쪽으로 부풀리는 선전선동 기관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북측의 고려연방제에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임동원 청와대 통일특보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이 낮은 단계로 고쳐졌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측이 6·15 공동선언때 처음 내놓은 것이 아니라 1991년 1월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그 신년사는 북측의 통일방안이 그 이전 공세적인 성격에서 방어적이고 수세적으로 바뀌는 의미있는 신호였다.

그 후 북측의 연방제는 사실상 본질적 내용이 달라졌다. 북측이 이렇게 방어적으로 된 것은 90년대 들어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해서 북한의 큰 울타리가 없어졌으며 또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북측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 바로 그 해 12월 남북의 총리가 합의해 낸 남북기본합의서였다. 실천되지는 못했지만 남북 양 정부의 대표성을 전제로 초기 형태의 체제연합을 설계한 것이 이 기본합의서다.

북측의 연방제와 남한의 국가연합 방안이 갖는 공통점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치적 실체를 존중하고 그것을 구성인자로 삼는다는 데 있다.

차이점은 국가주권을 남북한에 각각 그대로 두느냐의 여부로 그 해결이 쉽지는 않다. 현단계에서 외교·군사권의 통합까지는 어렵다.

그러나 가능한 분야만으로 느슨한 국가연합이라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평화와 공존공영의 길이 어디 있겠는가.

국가연합의 전단계로 분야별 정책연합을 들 수 있다. 남북한 사이에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정책연합을 펴 나갈 수 있는 상황적 요건이 존재한다.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림정책,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건설정책, 철도 연결을 위한 교통정책, 금강산과 동해안을 연계하는 관광정책, 고기잡이와 해저자원 탐사를 위한 해양수산정책 등이 그것이다.

실질적인 정책연합과 함께 정상회담, 각료회의, 의회회의를 정례화하면 국가연합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구소련 지역의 독립국가연합(CIS)이 '남북한주권국가연합'의 현실적 모델이다.

남북한은 이념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국가연합을 이룰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수천년 역사와 민족적 동질성이 국가연합의 골조에 더 강력한 시멘트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념과 체제로 통일국가를 이룰 것이냐는 결과 상정보다도 협상과 합의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국에서 2차대전후 집권한 노동당이 이룩한 복지국가 정책은 1951년 정권교체로 들어선 보수당 정부에 의해 그대로 계승됐다.

또 토니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소속이지만 보수당의 대처 정부가 이루어 놓은 노동조합 통제정책을 그대로 승계했다. 영국 특유의 '컨센서스'라는 정치적 전통이다. 우리에게 민족문제인 대북정책과 통일방안이야말로 정파를 초월하는 '컨센서스'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김재홍·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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