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5월25일 미국의 시인 겸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이 보스턴에서 태어났다.1882년 몰(歿). 에머슨가(家)는 7대에 걸쳐 성직을 이어온 목사 집안이었다. 랠프 에머슨도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유니테리언파(派) 목사가 됐지만, 교회와의 마찰로 3년 만에 성직을 떠났다.
유니테리언파는 삼위일체론을 교의로 삼는 기독교 주류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신성만을 인정하는 교파다.
성직에서 벗어난 에머슨은 영국으로 건너가 워즈워스, 콜리지, 칼라일 등 당대 영국의 대표적 문필가들과 사귀었다.
이들과의 교유는 에머슨이 귀국해서 펼칠 초월주의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에머슨의 ‘자연론’(1836)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초월주의는 현실 세계의 배후에 초감각적인 초월 세계가 실재한다는 믿음을 확장해 현실 세계 역시 무한하다고 보았다.
사상사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나 칸트의 ‘물자체(物自體)’에 끈이 닿아 있는 소박한 관념론의 일종이다.
초월주의는 그러나 1830년대부터 본격화한 미국 산업혁명과 서진(西進)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무한한 세계를 동경하는 미국인들의 개척자 정신에 고전적 표현을 부여했다.
에머슨을 비롯한 초월주의자들은 매사추세츠주 동부 도시 콩코드에 몰려 살았기 때문에 콩코드 그룹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주로 계간지 ‘다이얼’을 통해 개인 속에 내재하는 신(神)과의 합일이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등을 설파하며 한 시대의 미국 정신을 신비주의로 채색했다.
체계를 갖춘 철학 사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명비평이나 문학운동에 가깝기는 했으나, 초월주의는 프래그머티즘이 본격화할 때까지 미국 사상의 주류를 형성하며 그 자장(磁場) 안에 소로, 호손, 멜빌, 휘트먼 등 뛰어난 재능들을 끌어 모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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