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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펄 벅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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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펄 벅 '대지'

입력
2002.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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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들 무렵, 다른 아이 같으면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의 나는 힘들다는 것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나는 혼자 살면서 중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혼자라는 사실이었고 책을 가까이 할만한 정신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그 시절 어느 날인가, 서울 응암동의 한 헌책방에서 신문지로 싼 책 한 권을 보았다. 퀴퀴한 곰팡내가 배어 있던 ‘대지’라는 책이었다.

웬일인지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헌 책이라 적은 돈을 주고도 사서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이 나에게 평생 잊지못할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힘들고 지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이 책은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 세웠고 그것은 책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어린 내가 이 책이 전해준 내용과 의미를 잘 알았을까마는,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외로움을 잊고 행복감에 젖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대지’는 땅의 근본적 의미, 생명의 바탕으로서의 땅, 그 위에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 역정과 인간 본연의 삶, 한 개인의 영혼의 성장과정, 그리고 흙에 대한 간절한 애정을 분명하고 차분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빠른 세월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 온갖 환란 속에서도 땅을 믿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게 희망과 함께 삶의 끈기를, 그리고 슬픔을 묻고 살아 갈 수 있는 지혜를 선물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나의 작업이 과거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현재 민중의 삶에 기초하고 있는 것과, 흙의 소중함과 이 땅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숨결을 그림 속에 담고자 한 것은 이 책에서 가슴 깊은 울림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정은 나의 대지이다. 나는 거기서 나의 정신적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라는 저자 펄 벅의 말 역시 나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가정에 충실하려고 한다. 사랑스러운 나의 두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미래의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김재홍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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