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시인 등단 40년만에 첫 산문집 '산길'내시인 이성부(60)씨가 산으로 눈을 돌린 것은 1980년 ‘5월 광주’ 이후였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광주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오르기 시작한 산이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비겁함을 잊게 했다. 커다란 위안이었다.
이성부씨가 산문집 ‘산길’(수문출판사 발행)을 출간했다. ‘시인의 산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80년 5월 봄날의 절망과 슬픔 때문에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던 시인은 산을 타면서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산길’은 또한 이씨가 등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는 산문집이다. 그가 한국의 산을 오르내리면서 겪고 느낀 글을 모은 것이다.
그는 얼마나 산이 좋았던지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도 마음에 산을 모셔놓았다. 지난해 발표한 시집 ‘지리산’에 실린 표제작 ‘지리산’은 짧지만 절절하다.
‘가까이 갈수록 자꾸 내빼버리는 산이어서/ 아예 서울 변두리 내 방과/ 내 마음 속 깊은 고향에/지리산을 옮겨다 모셔 놓았다/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취해서/ 꿈속에서도 눈구덩이에 묻혀 허위적거림이여’
산문집에는 시인의 깊은 산 사랑이 진솔한 언어로 풀려 나온다. 사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산에 오르기로 한 일요일까지 기다리기가 쉽지 않다.
“산은 먼 발치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내용과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어려움과 고통을 참아낸 연후에라야 진정한 자기를 인간에게 준다.” 사람살이가 그렇다.
직접 부딪치고 부서지는 몸의 체험이 있어야 더 큰 ‘나’를 얻는다.
‘먼 발치로 바라보는 산이 아니라/ 가까이서 몸 비비러 가자/ 온몸으로 온몸으로 우리 부서지기 위해 가자’는 힘찬 시구는 그가 산과 부대낀 뒤에 얻은 것이다.
그는 북한산을 꼼꼼하게 훑어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시인 혼자 다니면서 찾아내기도 했다. 그 사연이 산문집 2장 ‘삼각산 이야기’에 꼭꼭 담겼다.
이제 그는 서울 밖으로 나와 지리산과 몸을 섞기 시작한다. 이씨는 6년 전 지리산에서 시작해 백두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백두대간 종주는 곧 우리 땅의 등뼈를 밟는 산행이다. 이성부씨는 종주의 끝자락인 지리산만 100여 차례 올랐고 4번을 종주했다.
어느 하루 날을 잡아 지리산을 오르기로 했다. 칠흑 같은 밤과 장대비와 강풍과 싸워야 했다. 무엇보다 지칠 대로 지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다. 그는 17시간 만에 지리산을 종주했다.
왜 자신과 싸우는가. 이 싸움에는 목적이 없고 전리품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고통을 계속한다. 왜 산을 오르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산악인 말로리의 유명한 답은 모든 산악인들이 뜨겁게 공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행은 그대로 인생이다. “시인이 걷는 삶과 시의 길도 그렇게 어려움의 되풀이 속에서 성취된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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