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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주화와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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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주화와 '역적'

입력
2002.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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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달 전부터 경찰서 외벽에 불만스런 어조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전국 120만 경우회원 일동'의 플래카드다.

동의대 사건의 당사자였던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관련자로 인정된 이후 붙은 글이다. 경찰관의 동료애와 울분이 담긴듯한 현수막이 안타깝다.

순직의 의미가 훼손되는 것 같을 때 그들이 받게 되는 상처도 감지된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되면서도, 이 문구는 아무래도 너무 논리를 단순화한 듯하다.

■ 논리학 교과서에는 이런 삼단논법이 소개돼 있다.

책은 이런 추론이 타당한 논법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그 사람은 농부이면서 시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순직 경찰은 역적이란 말이냐?'라는 외침도 이와 유사하다. 민주화 운동을 저지했다고 해서 역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글은 그들이 '직무에 충실한 경찰관'이었다는 점을 생략한 채, '역적이냐?'고 다그치고 있다. 논리적 비약이다.

■ 비슷한 물음이 교단에서도 제기된 적이 있다. 같은 날, 1980년대 전교조 운동을 한 교사들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전교조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던 교사 쪽에서 물었다. "그러면 당시 묵묵히 교단을 지켰던 교사들은 반(反)민주 세력인가?"라고.

그 물음 역시 타당한 추론이 아니다. 전교조 쪽에서 답했다. "누구를 항일 애국자로 인정한 것이 일제 때 묵묵히 산 사람을 매국노라고 욕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침묵했던 교사들을 반민주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 23일에는 12ㆍ12 때 군사 쿠데타를 막으려다 강제전역 된 군인 78명이 민주화 운동관련자로 인정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교조 운동 역시 군사정권 속에 교육현장에 민주의 씨앗을 뿌린 운동이었고, 동의대 사건 또한 그 정권에 맞서다 발생한 불행이었다.

불행은 모두 무도한 군사정권에서 잉태된 것이다. 동의대 사건에서도 학생들의 정의로운 열정과 직무에 충실하려 했던 경찰관의 명예가 같은 높이로 기려지는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 때로는 양시론이 필요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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