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과학, 기술 수준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았어요. 그런 전통을 살려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책을 냈어요.“남문현(南文鉉ㆍ60)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손 욱(손 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과 함께 최근 ‘전통 속의 첨단공학기술’ (김영사 발행)을 출판했다. 손 원장은 중국 출장중이라 남 교수를 만나봤다.
우리 역사에서 과학, 기술 관련 부분만 따로 떼내 엮은 이 책은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고 그림 사진도 풍부하다.
남 교수는 공학자로서 우리 전통 유물을 볼 때마다 그 세계적 수준에 놀란다고. 가령 국보 141호 잔줄무늬 청동거울을 그는 ‘신의 솜씨’로 표현한다.
2,400여년전 청동기 때 만들어진 이 거울에는 머리카락 굵기의 1만3,300개 직선과 100여개의 동심원이 있다.
남교수는 “자와 컴퍼스가 없다면 그릴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청동거울을 만들었는지 놀랍다”고 감탄한다.
인위적으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술잔을 회전, 정지시키는 포석정은 유체역학의 원리를 절묘하게 이용한 유적.
중국 일본에도 비슷한 게 있지만 비교가 안된다고. 해시계는 여러 나라에 있었지만 해 그림자를 통해 사계절을 보여준 것은 우리나라의 앙부일귀가 거의 유일하다.
남교수는 세종 장영실 등 과학 기술의 발전과 보급에 기여한 인물도 소개한다.
간의 일성정시의 등 천체관측기구, 경자자 갑인자 등 금속활자, 각종 도량형기구가 세종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세종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세종의 명을 받아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물이 일정 정도 차면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동아시아 유일의 물시계.
남교수는 “물의 양이라는 아날로그신호를 디지털신호로 변환, 종 북 징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술사의 금자탑”이라고 극찬한다.
18세기 홍대용은 서양 기하학의 원리를 활용, 천체와 지상 측량에 공헌했고 정약용은 수원 화성 설계 하나만으로도 국제 학술회의를 해마다 열어도 모자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고 말한다.
남교수는 특히 우리 조상이 인문학을 중시한 나머지 과학과 기술은 등한시했다는 이야기는 틀린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왕을 하늘의 아들이라 했어요. 하늘이 내려준 귀한 존재라는 뜻도 있지만 하늘의 원리 즉 천문을 그만큼 잘 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왕은 이를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시간을 정해주었지요.”
여기서 시간이란 예를 들어 종각에서 사람의 통행을 제한, 허용하는 종을 친다든가, 성을 쌓을 때 작업의 시작과 종료 시점을 일러주는 등 백성의 생활과 직결된다.
영의정만 해도 천문 역법 지리를 총괄하는 관상감의 영사(우두머리)였다. “왕, 영의정이 과학의 대가였으니 과학과 기술을 등한시했다는 이야기는 옳지 않아요.”
남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전통 기술을 현대식으로 변형하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현재 판매중인 휴대용 해시계가 큰 인기를 끄는 것이 좋은 보기. 고궁에 물시계를 복원하면 관광수입이 늘 것이라고도 말한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과학과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게 우리 후손들의 임무”라고 남교수는 강조한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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