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4일 아무렇지도 않게 16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총무회담을 27일 다시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국회법상 현 국회의장 임기 만료(29일) 5일전으로 돼 있는 신임 의장 선출 기한(25일)을 넘기는 법 위반을 하면서도 사과는 커녕 해명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왕 늦었으니 무리하지 않겠다"며 여유까지 보였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이미 주초 간담회에서 "아무래도 기한을 지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국회법 무시를 기정 사실화한 바 있다.
향후 총무간 협상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29일까지의 의장단ㆍ상임위원장 선출 원칙만 강조될 뿐, 의장과 운영위원장 등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언제쯤 국회가 정상 가동될지는 오리무중이다.
양당의 이 같은 배짱은 아마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대회 개막을 계산에 넣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달의 대회 기간을 전후해 느긋하게 문제를 풀어도 국민의 관심이 온통 축구에 쏠려 있는 사이 욕을 먹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하다.
그러나 법과 대의, 의무를 저버리고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이런 행태가 바로 정쟁이다. 꼭 목청을 높여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정쟁을 중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양당의 월드컵 기간 중 정쟁 중단 선언은 이런 점에서 이율 배반적이다.
하긴 국회법의 원 구성 규정이 무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이 규정이 신설된 이후 세 번의 원 구성과정에서 시한이 지켜진 적은 16대 국회가 개원한 2000년 단 한번 뿐이다.
법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이다. 규정이 비현실적이라면 시한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차라리 솔직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위반 시 제재조항도 함께 있어야만 한다. 법 위를 군림하는 게 입법부가 아니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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