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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 근무제 / 은행권서 '물꼬'…법제화작업 탄력 받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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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 근무제 / 은행권서 '물꼬'…법제화작업 탄력 받을듯

입력
200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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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주5일 근무제’의 물꼬를 텄다. 당장 7월부터는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지방은행 등 전국 모든 은행의 영업점이 매주 토요일마다 공휴일처럼 문을 닫는다.엄밀하게 따지면 은행권의 이 같은 결정은 노사의 자율적 합의에 기초한 ‘토요 휴무제’이지 토요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하는 법제도상의 ‘주5일 근무제’는 아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토요 휴무는 ‘이틀간의 연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업과 개인의 거래관행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꿈으로써 산업 전반에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등 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재계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는 노사정 협상에도 압박을 가해 주5일 근무의 법제화 작업에 탄력을 주는 것은 물론, 성장과 생산성 제일주의에 전도된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삶의 질’ 중심으로 옮기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금융기관 이용관행의 변화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더라도 당장 큰 혼란은 없으리라는 게 금융권의 판단.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은데다 인터넷 뱅킹이 널리 확산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은행별로 ‘거점점포’를 두어, 주5일 근무가 사회적 관행으로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토요일에도 정상업무를 한다는 비상대책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

하지만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많은 고객들은 종전의 은행 이용관행을 수정해야만 한다. 자동화기기 보급이나 인터넷뱅킹 등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창구거래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은행업무 중 창구거래의 비중은 33.3%로, 텔레뱅킹(14.6%), 인터넷뱅킹(14.2%)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로 창구거래에 의존해온 고객들의 경우 토요휴무가 시작되면 은행을 이용할 시간이 1년에 52일(평일기준 26일)이나 줄어드는 셈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불편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들 고객은 예금 입출금이나 공과금납부, 어음결제 및 수표교환 등 주요 은행거래를 가능한 한 주초에 하는 습관을 들이고, 인터넷 뱅킹을 생활화하는 등 미리미리 상황변화에 대한 대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찌 됐든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인터넷 뱅킹이나 텔레뱅킹 이용자가 자연스럽게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 촉각 곤두세운 기업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기업들이다. 대부분 기업이 주6일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은행이 토요 휴무에 들어가면 수출입 대금결제 등 기업활동에 적지않은 지장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자금사정이 어렵고 경쟁력도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 결정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는 기업활동을 지원해야 할 은행이 주 고객인 중소기업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불편과 어려움을 일방적으로 감수하고 따라오라는 강요나 다름없다”며 “근로자가 사용한 휴가에도 임금을 보전하는 선례를 남기는 등 사회 각 부문의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주요 재계단체들도 은행권의 합의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시함과 동시에 사태의 파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은행권 합의가 좋지 않은 선례가 돼 향후 노사 협상에서 ‘가이드 라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

경총 김정태 이사는 “개별 단협을 통해 금융 노사처럼 주5일 근무제가 채택될 경우 휴가나 휴일수 축소 등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 상승 등의 악영향만 초래할 공산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정서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토요휴무 합의로 주5일 근무제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될 전망이다.

격주 토요휴무제를 실시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은행들의 휴무로 토요일 결제가 원활하지 못하다면 점차 기업들의 토요 휴무도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법제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장별 노사협상으로 ‘주 40시간’(주5일) 근무형태가 빠르게 전파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렇게 되면 1948년 주48시간제가 도입된 뒤 반세기 만에, 1989년 주 44시간제로 바뀐 뒤 13년 만에 우리사회는 적어도 노동시간에서만큼은 서구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은행권 준비상황

시중은행들은 7월1일부터 주5일 근무를 실시하기로 함에 따라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은행들은 토요일 공백을 거점점포, 야간점포, 자동화기기, 인터넷뱅킹 등으로 대체하는 한편, 최소 인원을 당분간 근무하도록 할 방침이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분야는 기업들의 어음ㆍ수표 결제나 공항 등에서의 외환업무. 이와 관련 국민 우리 서울 등 대부분 은행들은 토요근무가 많은 기업 밀집지역이나 매일매일 현금을 취급하는 재래시장, 공항 대형쇼핑센터 등 외환업무 수요가 많은 지역 등에 대해서는 토요일에도 거점 점포를 운영할 방침이다. 또 고객들의 은행 업무가 금요일에 집중될 것에 대비, 야간점포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어음ㆍ수표 결제의 경우 이미 토요일을 만기로 발행된 어음ㆍ수표 소지자에 대해서는 거점 점포를 이용하도록 하는 한편, 정부와 협의해 결제일이 월요일로 자동 연장되도록 ‘어음교환소 규정’ 개정을 추진중이다. 앞으로는 토요일 만기를 피해 발행할 방침이다.

은행들은 또 대출 원리금에 대해서는 토요일이 만기일이거나 이자납부일일 경우 그 다음주 월요일로 기한을 자동 연장해 줄 방침이다. 이경우 연체이자가 부과되지 않는다.

공과금은 납기일이 토요일이면 우체국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정부와 협의해 토요일 납기 공과금을 월요일에 납부해도 가산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국세기본법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ATM(현금자동입출금)기와 CD(현금자동입금기)기의 이용시간(현재 오전8시~밤10시)을 확대하고, 인터넷뱅킹을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 보강을 추진중이다.

카드업무의 경우 가맹점 대금지급 처리를 위해 최소 직원들을 근무하도록 하는 한편, 사고에 대비한 콜센터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고객 불편을 막기위해 정부와 은행연합회, 각 시중은행들로 구성된 대책반에서 이미 세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토요일 휴무로 인해 은행 입장에서는 비용이 절감돼 수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부익부 빈익빈’ 부작용도 우려

공무원의 월 1회 시험실시에 이어 기업활동 및 국민생활과 직결돼 있는 은행들이 7월부터 토요 휴무키로 함에 따라 주5일 근무제가 전 산업으로 급속히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법제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장별로 단체협약을 통해 주5일 근무제를 추진할 경우 노조의 협상력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되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근로자수 500~999인 사업장의 38.3%, 1000인 이상 35.9%, 300~499인 30.8%, 100~299인 17.7% 등으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토요휴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 토요휴무 합의 등의 영향으로 대기업들이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토요휴무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데다 노동계가 올 임단협에서 주5일 근무제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놓은 상태에서 협상력이 강한 대기업 노조들이 금융노사의 합의를 벤치마킹해 사측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가 아예 없거나 협상력이 약한 중소ㆍ영세 사업장으로선 당장 주5일 근무제 도입이 힘든 상황이다. 사업주 입장으로서는 임금인상, 10% 이상의 추가 인력 수요 등 비용 증가 부담으로 근로자들의 주5일 근무제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지 않는 기업의 근로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이고 열악한 근로조건에 놓이게 되고 기업으로서는 현재보다 더욱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릴 것으로 분석된다. 또 휴가나 임금보전 방법 등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장별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경우 업체별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 노사관계 악화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최종 합의되지 않을 경우 지침을 만들어 사업장별 협상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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