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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지자체도 레임덕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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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지자체도 레임덕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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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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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이후 출근, 근무시간 자리 뜨기, 현안사업은 다음 단체장 몫으로…”지방선거를 앞둔 상당수 지자체들의 요즘 모습이다. 단체장이 출마를 포기한 지자체는 현안사업에 손을 놓고 있으며, 특히 단체장이 구속된 지자체는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또 현직 단체장이 출마한 지자체는 한 표라도 잃기 않기 위해 각종 불법행위에 눈을 감아 불ㆍ탈법이 성행하고 있다.

고질적인 지자체 레임덕과 행정표류의 부작용이 갈수록 커져 이제는 처방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 기강 해이

22일 수도권의 한 광역 지자체의 국장급 간부가 출근한 시각은 오전 9시20분.

전날 과음 탓에 입안에 술 냄새를 풍기면서 허겁지겁 사무실로 들어섰다.

평소 오전 8시 이전에 출근, 국 현안업무를 챙겼던 이 간부는 최근 간부회의도 거른 채 일손을 놓고 있다.

기강해이는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평시와 달리 근무시간인데도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고 점심시간도 길어졌다.

참다 못한 한 지자체는 이달 초 정문 등에서 지각 출근하거나 점심시간을 넘기고 오후 1시이후 청사로 들어오는 공무원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등 기강 확립에 나섰으나 내부 반발이 심해지면서 1주일여 만에 이 같은 ‘단속’마저 흐지부지 자취를 감췄다.

단순한 기강해이 뿐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의 선거캠프에 기웃거리는 등 선거에 개입하는 공무원도 부지기수다.

행정자치부는 4개 기동감찰팀을 가동, 전국의 각 지자체에 대한 공직기강 해이 실태를 점검하고 있으나 단속 실적은 거의 없는 것을 전해지고 있다.

◈ 현안 사업 표류

전국 16개 광역단체중 현직 단체장이 출마를 포기한 지역은 서울, 인천, 경기 등 7개 지역. 특히 인천, 대구, 전북 등 3개 광역단체장은 구속수감돼 있어 현안사업은 물론 일상 행정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대구시는 문희갑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오던 롯데의 골프장 및 특급호텔 건설과 삼성 전용야구장 건설과 첨단사업 유치 등 굵직한 현안 사업이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최기선 인천시장 역시 구속 수감돼 후속인사와 김포매립지 사업 등 대단위 사업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인천시는 영종동 제2연륙교 건설을 놓고 사업자인 영국의 아멕스사와 건설교통부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해 아멕스사가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상당수 지자체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팀은 사실상 업무를 중단하고 있으며, 외자유치 업무 담당 부서 직원들도 추진해 온 사업 마저 다음 단체장 몫으로 남겨둔 채 마무리 할 뜻이 없어 보인다.

경기도의 한 고위간부는 “임창열 지사가 출마를 포기한 후 간부 공무원은 물론 실무자들이 주요 사업에 대해 예전처럼 열성적이지 않아 않아 도정(道政)의 맥이 끊어져 버린 느낌”이라며 “단체장이 출마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도 똑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단속은 선거 후로

시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기초자치단체도 레임덕의 예외가 아니다.

특히 현직 시장ㆍ군수가 출마한 지역은 느슨한 불법행위 단속으로 불ㆍ탈법 행위가 성행하는 등 행정 사각지대다.

수원시의 경우 하루 평균 500~600여건의 불법 주ㆍ정차를 단속했으나 최근에는 단속건수가 30~40%가량 감소했으며, 안산시도 주차단속 건수가 비슷한 비율로 줄었다.

서울시도 등록차량 10대중 3대가 자동차 세금을 체납하고 있으나 선거를 앞두고 민원을 우려해 번호판 영치 등 강제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올 1·4분기 서울시의 자동차세 체납액은 모두 2,827억원. 지난해 4·4분기 체납액 2,435억원에 비해 392억원이나 늘었다.

그러나 25개 자치구의 체납차량 번호판 영치실적은 2만4,534대로 체납차량 70만대의 3.5%에 그치고 있다.

고양시의 자동차세 체납건수 역시 전년도와 비슷한 8만여건에 이르지만 차량번호판 영치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100건이상 줄었다.

서울시내 구청의 한 공무원은 “평소 계장이나 과장이 각종 불ㆍ탈법행위 단속을 독려하지만 선거때만 되면 별로 챙기지 않는다”며 “단속을 세게 하면 오히려 눈총을 사게 돼 하고 싶어도 단속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김익식(金益植ㆍ한국행정학회 지방행정연구회장)경기대 교수는 “대통령 임기말의 레임덕현상이 단체장 선거때만 되면 지자체에서도 재현돼 행정공백으로 인한 주민들의 직ㆍ간접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선거직이 아닌 부단체장이 책임을 지고 공직기강 확립은 물론 현안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구청공무원이 전하는 레임덕 현장

“전체적으로 근무 기강과 강도가 눈에 띄게 약해져 있어요. 과거처럼 출근이 늦어진다던가 아니면 시급히 처리할 일을 마냥 미루고 있다던가 하지는 않아요. 다만 민원서류 발급처럼 눈앞의 일만 손댈뿐 다른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시내 한 구청의 계장급 공무원(6급) A씨가 전한 최근의 구청 분위기이다. 이곳은 구청장이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출마가 불투명한 상태. 이로 인해 구청장은 외부로만 돈다.

부구청장 이하 간부에서 말단 직원까지 담당 업무는 거의 ‘올 스톱’ 상태로 단순 잡무만 끄적이며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업무 분위기가 이렇게 느슨해 진 것은 2개월전 부터. 단체장 임기가 끝나가면서 새 사업 구상 보다는 현재 업무를 마무리하는데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A씨의 말. “지난해 말부터 추진하던 사업이 있었는데 예년같으면 2~3개월이면 끝내야 할 것을 세밀한 종합점검 등을 핑계로 완료시기를 조금 늦췄습니다. 일찍 끝내면 또 다른 업무가 주어질 것 같아서였죠. 괜히 새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지휘관(구청장)이 바뀌면 나만 피곤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레임덕 현상에 대해 맡은 바 업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고 ‘엿가락 늘리듯’ 길게 늘리는 것이 최근의 달라진 점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얼마전 실시된 내부회의에서 한 간부가 도로정비에 관한 사업 아이디어를 냈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구청장이 바뀌면 사업을 중단하게 될 지 모르는데 지금 굳이 시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상황이 이러니 국ㆍ과장급들도 어차피 진행이 어려운 새 사업 등은 부하 직원에게 아예 언급조차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굳이 레임덕이라기 보다 선거 이후 단행될 인사이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청장이 바뀌면 노른자위 부서 담당자도 줄줄이 바뀌게 되고, 더구나 다른 정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완전히 보직체제가 재편될 텐데 누가 이 시점에서 자기 업무에 의욕을 갖겠습니까.”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선진국의 경우는

임기제 단체장의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많은 학자들이 “임기말 레임덕은 단체장에 권한이 집중될수록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며 “레임덕이 보편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선진국은 제도적 장치와 운영의 묘를 통해 단체장의 권한을 분산함으로써 레임덕 부작용을 줄이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시장-의회형’ 지방자치제도를 운영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지방의회가 단체장 불신임 권한을 갖는 등 단체장과 대등한 견제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여와 재정적 통제 권한이 강해 단체장 임기말 레임덕에 완충역할을 맡는다.

우리처럼 단체장의 권한이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지방자치행정과 국가의 지방행정기관이 병존하면서 기능을 수평적으로 분담하는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리고 있어 단체장의 레임덕이 심각해질 여지가 없다.

엽관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는 미국의 경우도 단체장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돼 있어 대부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이 확고한 직업공무원제와 지방의회가 단체장 교체기의 혼란을 줄이는 것이다.

영국은 상당수 자치단체에서 단체장을 지방의회 의장이 임명하는 ‘의회지배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치단체의 국장은 시장이 아니라 그 지방의회 소관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주민밀착형으로 지방자치제를 운영, 기관장 레임덕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성호(金聖鎬) 박사는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지방자치선진국들은 ▦강력한 지방의회 ▦확고한 공무원신분보장 ▦중앙정부의 감시와 견제 등 3가지 방법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단체장의 레임덕을 방지하고”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단체장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고, 공무원들은 인사상 전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장 1인의 ‘지배’에 일방적으로 복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단체장의 권력에 누수가 생기면 조직도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지적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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