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한국 대사관측이 탈북자의 망명 요청을 묵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정부의 소극적인 탈북자 정책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게 됐다.특히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 5명의 처리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주중 한국대사관측은 오히려 탈북자의 호소를 외면,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 일본 정부에는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 주문하면서 정작 우리 공관을 찾은 탈북자는 박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주중 한국 공관이 망명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고 되돌려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번째 사례다.
그 동안 우리 공관 직원들은 진입한 탈북자들에게 100~300위안(1만6,700~5만100원)을 쥐어준 뒤 돌려보내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베이징으로 흘러 들어온 탈북자들은 한국 공관에는 잘 진입하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공관이 탈북자들의 진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중 한국 대사관측이 이 달 초 중국 당국이 대사관 외벽에 철조망을 두르는 것을 허용한 데서도 드러난다.
중국측의 철조망 설치를 반대한 일부 외국 공관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대사관측은 3차례나 망명 의사를 밝혔으나 한국 직원이 반 강제적으로 끌어냈다는 탈북자 S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 당시 경위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다.
S씨가 망명 의사를 표명하기는 커녕 총영사부 행정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발적으로 떠났다는 게 대사관의 공식 해명이다.
그러나 S씨가 “방금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나왔다”며 도움을 호소했는데도 공관 직원들이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 뿐 아니라 진입 의도도 파악하지 않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담당 영사의 부재(不在)를 이유로 탈북자를 돌려 보낸 것은 공관의 구태의연한 업무 처리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탈북자들의 중국 주재 외국 공관 진입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우리 공관도 탈북자의 피난처로 이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 우리 공관을 찾는 탈북자를 외면하는 것은 이미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된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탈북자 S씨 행적
22일 한국 특파원들을 만난 S(36)씨는 탈북후 6년 동안 겪은 고난의 세월과 여러 차례 한국 망명을 거절당한 울분을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 호위총국 산하 평양시 삼석구역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92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등 반동적인 한국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강제제대를 당했다.
함경북도 전기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S씨는 1996년 9월 부인에게 “송이를 따러 간다”고 말하고 집을 떠나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다.
이후 그는 중국에서 3차례나 한국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요청했고, 중국 공안에 3차례나 체포됐다고 말했다.
탈북 한달만인 10월에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이어 97년 7월 산둥성 옌타이(煙臺)에서 현상금을 노린 밀고자에 의해 고발돼 처음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중국말로 모르고 신분증도 없는 상태에서 열흘이나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는 것이다.
10~11월에는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한국대사관 관리를 여러 차례 만나 한국행 망명 의사를 밝혔으나 역시 거절 당했다.
S씨는 이 관리가 호위총국 관련 비밀 정보를 모두 수집한 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주장했다.
98년 9월에는 홍콩으로 가기 위해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로 내려갔다가 다시 밀고로 체포됐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 하루 만에 풀려나와 국경 철책까지 기어올랐지만 국경 수비대의 추격을 받았다. 그는 나무 위에서 하룻밤을 새운 뒤 민가에서 여자 치마와 옷을 훔쳐서 입고 달아났다.
이 때부터 5년간은 쓰레기 및 화장실 청소, 짐 운반, 허드렛일 등을 하며 한국 행을 꿈꾸다 17일 다시 한국 총영사관을 찾았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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