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세계에서는 일상의 보편적 진리로 여겨지는 이치가 통하지 않는 예가 종종 있다. 공격적이고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팀이 이기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방어에만 급급해 졸전을 치르고도 승리하는 팀이 적지 않다. 반대로 경기 내용은 충실했지만 패배의 멍에를 감수해야 하는 팀도 있다.물론 최악의 상황은 경기 내용도 형편없고 승부에서도 지는 일이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그런 축구를 할 때가 많다. 때문에 나는 축구에서는 경기 시작전에 어떻게 하면 멋진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을 지 머리 속에 그려보고 꼼꼼하게 전략ㆍ전술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승부는 그 다음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기 내용이야 어찌 됐든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감독이나 선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게 축구다. 경기 내용에선 이기고 승부에서 졌다면 “오늘처럼만 한다면 미래는 밝다”는 희망을 가져도 좋다.
98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했을 때 사람들은 결과(우승)만 얘기했지 그 과정(경기내용)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프랑스의 경기내용은 찬사를 받을 만했다. 반대로 이탈리아는 지금 이기는 데 급급하다.
그리고 ‘전술적 축구’라는 말로 재미없는 플레이를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따분할 정도로 지루하고 뻔한 플레이의 결과물로 주어지는 승리를 옹호하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다.
팬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든 말든 ‘나쁜 축구’도 승리만 한다면 정당화될 수도 있다. 탁월한 전술덕에 이겼다는 자랑도 나온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프랑스는 전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우승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훌륭한 팀도 전술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식 전술의 관점에서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성공을 떠든다면 난센스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이유는 지네딘 지단의 천부적인 재능과 루이스 피구의 환상적인 개인기에서 찾아야 한다.
프랑스가 압박을 강화하고 백패스를 시도하면 일각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프랑스 축구의 본모습이 퇴색됐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똑같은 행동에 대해 축구평론가들은 전술이라는 논리로 이를 옹호하기 십상이다.
현대축구는 기술보다는 체력을 앞세운 힘의 축구가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재능보다는 힘이 지배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빠진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전통적인 우승후보들이 체력이 축구에서 승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재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바꾼다면 말이다. 나는 분명 월드컵이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들 우승후보와 함께 프랑스와 스페인의 기술축구가 꽃을 피운다면 금상첨화다. 잉글랜드도 빼놓수 없다. 데이비드 베컴의 부상 회복 속도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수 있지만 축구종가의 드높은 자존심을 충족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피구를 앞세운 포르투갈과 아프리카의 폭발적인 플레이도 눈길을 끌만 하다. 32개 출전국이 모두 기술축구라는 모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면 이번 월드컵은 그야말로 지상최대의 잔치가 되리라 믿는다. 그래야 월드컵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프로필
▦생년월일:1938년 11월5일 아르헨티나 로사리노 출생
▦월드컵 출전:1978년 82년(감독)
▦월드컵 우승:1978년
▦별명:골초
▦포지션:미드필더
▦소속팀:보카 후니어스(선수ㆍ감독) 산토스(선수)
▦경력:74년 10월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93년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역대 최고 감독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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