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 등 여권 수뇌부에서 2000년 당시 최규선(崔圭善)씨 처리문제를 놓고 빚어졌던 갈등의 내막이 23일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여권의 3각 갈등은 2000년 6월 국정원이 최씨 비리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표출됐으나 그동안 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되며 무성한 추측을 낳았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최씨 비리와 홍걸(弘傑)씨와의 유착관계를 보고 받은 김 대통령은 이를 최측근인 권 전 고문에게 통보했고 권 전고문은 “국정원 보고내용이 잘못됐다”며 국정원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당황한 김 전 차장이 7월초 즉각 권 전고문을 집으로 찾아가 해명을 시도했다. 권 전고문은 김 전 차장에게 “구체적인 정보나 근거도 없이 유언비어를 가지고 사실조사를 한 것 처럼 청와대에 보고,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느냐”며 질책했고 김 전 차장은 “엉터리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수세에 몰린 김 전 차장은 “국정원의 보고내용이 맞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최씨가 권 전 고문의 특보라며 설치고 다니니 직위라도 해제해야 한다”며 최씨를 홍걸씨 주변에서 떼어낼 것을 요청했다.
당시 김 전 차장은 최씨에 대한 청와대 보고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A4 용지 한 장을 서류봉투에 넣어 가져갔지만 “권 전고문이 이미 대통령에게 국정원 보고내용을 듣고 알고 있어서 요약내용을 꺼내 보여주거나 추가로 관련첩보를 알려주지는 않았다”며 비밀누설 혐의를 부인했다.
김 전 차장은 이 자리에서 진승현(陳承鉉)씨의 로비자금 5,000만원과 해외 여행경비 수백 달러를 권 전고문에게 전달했다.
김 전 차장의 충고 이후에도 최씨는 한두 달 가량 더 권 전고문의 특보로 위세를 부리다 8월 이후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거듭된 주변의 진언에도 불구, 최씨와 홍걸씨간 유착관계는 청산되지 않아 최씨를 둘러싼 여권 수뇌부간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국정원의 보고 내용을 권 전 고문에게 말해 준 것과 관련, “측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느냐”며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권 전 고문은 대통령을 통해 국정원 보고 내용을 전해 들었고, 김 전 차장은 이미 권 전 고문이 알고 있던 내용 외에 새로운 내용을 전하지 않아 기밀누설죄는 적용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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