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엔 익숙하면서도 하루하루 사는 일에 치이다 보면 10년 전의 ‘변하기 전 강산’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어렴풋이 ‘많이 변했겠지…’라고 짐작하다가 가끔 언론보도를 통해 흘러나오는 10년 전 물가를 듣고 ‘그렇게 많이 올랐어’하며 놀라는 정도다.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자리잡은 아파트는 어떨까. 거금 2억원을 손에 쥔 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집을 살 수 있을까.
같은 돈으로 현재 구입가능한 아파트와의 비교를 통해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 10년 사이에 얼마나 아득해졌는지 살펴보자.
◈ 집이 반으로 줄어
비교는 서울 강남으로만 제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10년 전인 1992년 5월 강남에서는 당시만 해도 ‘중형’보다는 ‘중대형’으로 여겨지던 30평형대 이상 아파트를 2억원에 살 수 있었다.
주된 평형은 33평, 34평. 개포동 우성3차 34평형과 개포동 경남1,2차 33평형이 1억8,000만원에서 2억3,000만원 사이였고 압구정동 구현대 33평형은 로열층도 최고 2억원이면 살 수 있었다.
일원동 삼성 31평형과 역삼동 개나리 34평형도 상한가가 2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대치동 은마 34평형은 1억7,000만~1억8,000만원에 불과해 남은 돈으로 당시의 최고급 승용차(3,000㏄급 현대 뉴그랜저ㆍ2,590만원)를 뽑는 여유도 가능했다.
10년이 지난 2002년 5월, 2억원으로 살 수 있는 집 크기는 딱 절반으로 줄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대표는 “사실 강남에서 2억원짜리 아파트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개포동 대치 17평형, 수서동 까치진흥 17평형, 개포동 대청 18평형, 수서동 신동아 18평형 등이 2억원 정도로 마련할 수 있는 아파트들이다.
내집마련 10년 계획을 세운 뒤 도중에 계획수정이 없었다면 손에 쥐게 될 아파트는 절반 크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세는 더 줄어
전세는 더 가혹하다. 10년 전 1억원을 들고 부동산중개업소에 나가면 강남 요지의 34평, 35평 아파트 전세매물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압구정동 구현대 35평은 1억원이면 느긋하게 전세를 구했고 대치동 은마 34평형은 1,500만원이나 남길 수 있었다. 이제는 14~16평형 아파트에도 1억원이 필요하다.
개포동 대치 14평형, 개포동 주공1~4단지 16평형, 수서동 까치진흥 15평형, 수서동 신동아 15평형 정도가 전세가 1억원 이내 아파트다.
◈ 아파트 구매력 절반 이하로 뚝
물가상승을 감안한다 해도 집값은 너무 올랐다. 2000년 100을 기준으로 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92년 1분기 69.4에서 2002년 1분기 105.5로 약 52%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구매력은 10년 사이 34.22% 감소했다. 즉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크기가 100에서 65.78로 줄었다는 얘기다.
반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의 크기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아파트에 관한 한 구매력은 다른 물건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는 얘기다.
김영진 대표는 “보통 내집마련 계획기간이 6~8년임을 고려하면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크기의 집을 미래에 차질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진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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