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비극은 닥쳐올 재앙을 정확히 내다본 예언을 누구도 믿지 않는데 있다.예지력을 준 예언의 신 아폴론을 배신한 댓가였다. 그 비극은 스스로 예감한 자신의 참혹한 최후를 누구도 막아주지 않은 것으로 끝난다.
부시 행정부를 곧장 카산드라에 비유하기는 이르다.
정부의 2인자 체니 부통령이 알 카에다의 가공할 테러 공격이 반드시 다시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자 숱한 국민이 불안해 한다.
7월4일 원자력 발전소 테러가 있을 것이란 정보에 전국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FBI 국장은 자살 폭탄테러를 경고, 공포를 부추겼다.
9ㆍ11 테러 뒤 거듭된 비슷한 경고는 모두 훈련 경보로 끝났지만, 악몽을 떨치지 못한 국민은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는 듯 비친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원래 몰이성적이다. 분별이 지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 지각있는 이들의 혀차는 소리는 세상의 소란에 가려지지만, 거짓과 은폐의 댐이 일단 무너지면 갇혔던 진실은 봇물 터지듯 드러난다.
진실을 좇는 이성의 속삭임은 이미 곳곳에서 들린다. 부시 행정부가 상식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허황된 테러 경보를 남발하는 것은 9ㆍ11 사태를 둘러싼 의혹을 누르기 위해서라는 비웃음이다.
이런 냉소적 시각에 따르면 원전 테러 경보도 불길한 조짐 몇 가지가 공개돼 불안을 키울 뿐 별 일 없이 지나 갈 것이다.
정부는 철통 같은 경계가 테러를 봉쇄했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경보의 정당성을 변호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랬다.
그러나 막연한 불안에 매달린 국민 일반과 달리, 언론과 민주당은 9ㆍ11 사태의 의혹을 가열차게 천착할 태세다. 핵심은 카산드라의 예언력 못지않은 정보 능력을 지닌 정부가 어째서 숱한 테러 정보를 외면한 채 무방비로 당했느냐다.
9ㆍ11 직후 파다했던 음모론이 변방의 소란이었다면, 이 논란은 유례없는 지지를 누린 전쟁 대통령을 직격한다.
노련한 방송 앵커 댄 래더는 "그릇된 애국심의 굴레를 벗고, 용감하게 일어서서, 우리의 혈육을 죽음으로 내 몬 자들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분연히 일어나 외쳤다.
사회 전체가 묵과한 의혹과 거짓을 파헤쳐야 한다는 양심의 목소리다.
언론과 민주당의 뒤늦은 의혹 추궁은 사태 8개월이 지나 국가적 센세이션이 진정됐고,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상 정치 회복이 절실한 때문이다.
애국적 열기와 언론 통제에 진상이 가려졌던 아프간 전쟁이 선전과 달리 질척거리는 상황도 관련 있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거세지는 상식과 양심의 반란에 '공포의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9ㆍ11 테러를 빈 라덴과 탈레반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감행하는데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탄저균 테러 위협을 과장한 것과 같은 행태다.
그러나 이제 그 효과는 낮다. 특히 아프간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켰을 뿐, 빈 라덴과 알 카에다와 탄저균 테러범 등은 종적조차 없는 사실은 애당초 이들이 9ㆍ11과 연관되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을 새삼 불러 일으킨다.
미국 내 진상 규명론은 아직 우회적이다. 그러나 외부 시각은 전쟁을 둘러싼 음모론의 역사를 뒤진다.
2차 대전 참전 명분을 찾던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탐지하고서도 일부러 무방비로 당했다는 고전적 사례를 비롯해 한국 전쟁과 걸프전까지 거론한다.
모두가 미국이 뚜렷한 도발 징조를 무시한 채 기습적으로 당한 뒤 국민의 분노와 적개심을 업고 '정의로운 전쟁'을 감행, 세계 질서 주도력을 다진 사례다.
자격이 논란된 부시 대통령은 9ㆍ11 사태와 아프간 전쟁을 통해 지도력을 확립, 나라 안팎에서 강경 보수정책을 추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 카산드라처럼 신뢰를 배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진실 규명 작업이 어디에 이를지는 점치기 어렵다. 그러나 유럽 언론의 표현처럼, 댐은 이미 무너졌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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