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의) 교수는 총장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총장은 능력있는 교수의 도움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미 아이오와대에서 32년간 재직하면서 각종 보직을 두루 경험, 미 대학총장의 선출ㆍ업무수행 방식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재온(金在溫ㆍ64ㆍ사회학ㆍ사진)교수.
그는 “미국의 총장은 내각제의 수상처럼 대학운영 전반에 전권을 행사하지만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면서 교수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1학기 동안 연세대 초빙교수로 와 있는 그는 “한국의 교수들로부터 ‘대학총장이 위기에 처해 있다’(17일자10면 보도)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면서 “이는 총장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인력, 돈)이 지원되지 않는 등 총체적인 시스템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총장은 철저하게 공개채용방식으로 충원됩니다. 대학을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출신 국가ㆍ대학은 물론 인종, 여성도 따지지 않아요. 공립대의 경우 실질적으로 총장을 뽑는 기구로 기업의 이사회에 해당하는 ‘리전트(Regents)’가 있으며, 여기에는 주지사ㆍ주교육감ㆍ하원의회의장ㆍ동창회장과 함께 지역과 직업을 안배한 각 분야의 성공한 인사 등 20여명이 참여합니다. 물론 이들도 투명한 절차를 거쳐 각계에서 추천된 사람들이죠.”
김 교수는 “미 일류대학 총장은 연간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장 선출에서) ‘우리 대학ㆍ학과’라는 기준은 무의미하고 오로지 능력과 리더십이 선출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면서 “따라서 총장에 뽑히면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사심없이 학교발전을 위해 일 할 수 있고, 능력만 있다면 10년, 20년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총장의 문제점에 대해, “직선제의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인력, 돈)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총장에게는 부총장ㆍ단대학장 대학행정을 함께 이끌어갈 보직교수에 대한 임명권이 부여돼야 하고, 그들의 임기에도 제한이 없어야 일관된 업무추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학총장은 지연ㆍ학연 등 인맥에 얽매이지 않고 책임을 지고 오래 일할 수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 총장은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총장 직선제와 임기제의 부작용으로 1, 2년만에 업적을 내려면 졸속행정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할 기회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서 “임기의 절반 가량을 업무 파악에 허비하는가 하면 교내 구성원들에게 이리저리 발목을 잡혀 총장 흉내만 내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2년 전 아이오와대 석좌교수가 돼 2년에 1학기동안 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김 교수는 비전과 리더십, 발전기금 조성능력 등을 총장의 주요 덕목으로 꼽았다.
학교 발전과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지원과 도움을 끌어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확실한 비전과 원만한 대인관계, 설득력 등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연방정부나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한계가 있는 만큼, 대학의 발전을 이끌고 교수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제공을 위해 외부에서 발전기금을 끌어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성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