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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9)덩샤오핑 아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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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9)덩샤오핑 아들을 만나다

입력
200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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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심철호(沈哲湖ㆍ현 사랑의 전화 대표)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랑의 전화’ 사업을 한창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나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심 선배를 찾아갔다.

중국 땅이 워낙 넓은데다 당시는 중국과 수교도 하기 전이라 그 사기꾼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심 선배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심 선배는 내 사정을 듣더니 한 장의 추천서를 써줬다.

그리고는 “이 추천서를 갖고 당장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가라. 그러면 중국 경찰보다도 먼저 그 사기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천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덩푸팡(鄧樸方) 귀하. 지금 찾아가는 정주일씨는 저와 아주 친한 사람입니다. 모쪼록 큰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덩푸팡은 당시 중국 제1의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ㆍ1905~97)의 장남이었다.

특히 경제분야에 관한 한 덩푸팡의 말 한마디는 아버지에 버금가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게 심 선배의 설명이었다.

“중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몇 번 만났는데 나와 금세 친해졌다”고도 했다. 나와 초원의 집 밴드마스터 이종옥(李鍾玉)씨는 이 추천서 한 장을 들고 중국으로 갔다.

덩푸팡은 휠체어를 탄 채 우리를 만났다. 베이징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문화혁명 시절 ‘자본주의자의 아들’로 몰려 실험실에 갇혔다가 8m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척추를 다쳤다.

우리와 만났을 때는 하반신을 거의 못쓰는 상태였다. 우리는 추천서를 보여주며 “사기를 당했다. 제발 그 놈 좀 잡아달라”고 통사정했다.

그로부터 딱 1주일 후. 사기꾼의 소재가 파악됐다는 연락이 왔다.

“걱정 말고 잠시 중국에 머물고 계시라”고 말한 덩푸팡이 중국 마피아 조직을 동원해 그 넓은 중국 땅을 샅샅이 뒤진 것이다.

그는 “일단 그 사람을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주겠으니 한국에 도착해서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은 마카오에 살고 있다는 그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에 그 사기꾼과 함께 올라탔다. 그런데 일이 또 꼬이려고 그러는지 그 비행기가 홍콩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게 아닌가.

홍콩에서 그 놈이 튀면 어떻게 하나. 홍콩에 머문 2시간 동안 우리는 마치 007 영화처럼 그 젊은 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히 그는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결국 김포공항에 내려 미리 연락해놓은 수사기관에 넘길 수 있었다.

사기꾼은 이렇게 잡았지만 그 5억원은 이미 다른 곳에 빼돌려진 상태였다.

그 놈은 감옥에서 몇 년 살다가 나왔고 나는 돈 한푼 건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이게 문제다.

사기꾼이 감옥에서 몇 년 몸으로 때우다가 나오면 숨겨둔 돈으로 평생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기범들이 전과가 많은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나는 결국 1년 정도 지난 다음 대치동 200평 땅을 팔아치웠다.

‘땅과 나는 인연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도 평당 1,000만원을 받고 팔아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도 7억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 86년 성남시 율동의 2,000평짜리 대지를 산 것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분당 분재농원이다.

사기 사건을 당한 후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자고로 어떤 사람이 아무 이유없이 내게 친절을 베풀면 그 사람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 결론은 훗날 내 정치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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